아들딸들에게, 스스로를 효자로 여기는지, 불효자로 여기는지 물어보라. 스스로를 효자, 효녀로 여기는 사람은 없거나 드물 것이다. 부모 먼저 떠나 보내고 죄의식 느끼면서 살지않는자식은 있기 어렵다. 훌륭한 부모는 자식에게 죄의식을 남긴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효도할준비를 채 끝내기도 전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제자들에게, 스승에 대한 도리를 다한 것으로 여기는지, 다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지 물어 보라. 도리를 다한 것으로 여긴다는 제자는 없거나 드물 것이다. 세상의 제자들에게, 훌륭했던 스승을 다시뵐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다. 엄격하게 따진다면, 스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제자는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이래서 5월은 세상의 아들딸과 제자들이 숨기고 사는 죄의식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은 5월이 되면 글을 빌리고 말을 빌려 부모와 스승에 대한 불효와 불민의 죄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것은 잘못하는 짓이 아니다. 그러나 아들딸과 제자들이 스스로 오로지 죄를 묻기만 할뿐, 그들이 어느새 부모와 스승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것은 잘 하는 짓이 아니다. 모든 은혜는 아래로밖에는 갚을 수 없다.사람은 무수한 껍질을 깨고 무수한 허물을 벗은 다음에야 마침내 온전한 인간이 된다. 내가이 5월에 기억하는 훌륭한 이들은, 내가 하나의 껍질을 깰 준비, 하나의 허물을 벗을 준비가되어 있을 때에 맞추어 이것을 도와준 이들이다. 내가 껍질 깨려고 허물을 벗으려고 몸부림치는 것과 때를 맞추어 부리질로 껍질을, 혹은 허물을 쪼아준 이들이다. 나에게도 그런 이들이 있다. 많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훌륭한 이들의 덕을 실명으로 기리는 일이 혹 자화자찬으로 기우는 일은 없는가? 이제 나 자신에게 말 물어 본다. 무슨 자격으로 그들의 은덕을기리는가? 너는 과연 껍질을 깨고 나오기는 나온 것인가? 허물을 벗기는 벗은 것인가? 네가 스승의 은덕을 입고 이로써 지금 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 너는 혹시 편애를 은덕으로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이름조차 회멸되고만, 구시대의 계산기 주판때문에, 도시락 검사때문에 시인을 꿈꾸던 내가 겪은 고초는 60년대 교육의 상징적인 야만에 속한다. 주산교사는 주산을 잘 놓지못하는 나의 까까머리를 주산으로 그대로 밀어버리고는 했다. 주산알 모서리는 얼마나 날카로운가? 주산 교사는 다른 과목은 곧잘 하면서도 주산을 잘 놓지 못하는 아이는 주산 교사인 자신을 업신여기는 아이라고 믿었다. 그의 주판알에 밀린 내 까까머리에서는 피가 흘렀고, 상처가 남긴 흉터는 중학교 졸업할때까지 내 머리에 남아있었다. 혼식여부를 확인하느라고 교사가 도시락을 검사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와 한 친구는 점심시간에 도시락검사를 기피했다는 한가지 이유때문에 교사로부터 비닐 우산대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얻어 맞았다.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지 못해서 점심시간에 물배 채우고 버짐나무 그늘아래서 윤동주를 외다 들어가 피가 나도록 매맞은 그날을 나는 눈물없이는 떠올리지 못한다.
이 시대 부모들과 스승들에게 묻지 않을수 없다. 혹시, 수학에 성취가 더디다는 한가지 이유로 인문학자를 꿈꾸는 소년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지는 않은가? 기하 과목에 지진하다고 해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소녀에게, 과학에 지진하다는 이유로 언어에 탁월한 성취를 보이는 아이에게 상처입히고 있지는 않은가? 있다면 먼저 가신 이들의 은덕 기릴 자격이 없다. 있다면, 당신네들을 그 따위로 길러놓은 부모나 스승의 은덕 기리는 것은 얼마나 부적절한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사람은 능욕당하지 않으면 남을 능욕하지 않는다. 사람은 상처입는 경험을 통하여 상처입히는 것을 배운다. 사람은 큰 상처를 받았을때 남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힌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우리가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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