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편지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시인 유치환은 행복 이란 그의 시에서 이렇게 애절한 편지를 쓰고 있다.편지는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향기롭고 달콤한 심연속으로 깊이 빠져보는, 해서 더 구체적인 자각을 볼 수 있는 작업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헌데 요즈음 우리들의 삶이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요란스럽게 꾸미고 싶은 마음의 서두름때문인지 편지 쓰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한때의 충만감 넘치던 가슴들로 나를 찾고 너를 그리면서 편지를 쓰다보면 결코 자신을 잊어버리는 무례는 없을 것이고 메말라 버석거리는 감정만을 안고 사는 공허로움으로 쓸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리라.

물론 요즈음엔 가정마다 전화라는게 떡 하니 버티고 있어서 수화기만 갖다대면 전국은 물론 세계 어느곳에까지도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 바쁜틈 쪼개어 구태여 편지쓰는 힘을 들이지 않아도 좋은 시대인 것 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러한 문명이 인간을 조금씩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하리라. 우리가 지배해왔다고 생각하는 문명 이기(利器)에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마저 잠식당하기를 거부한다면 가끔은 조용히 앉아 잃어버린 시간과 나를 찾는 편지 쓰는 여유를 권하고 싶다.

괴롭든 즐겁든 뿌리깊은 지난 삶으로 되돌아가노라면 그리움이 쏴 하고 몰려들어 곧장 수많은 파장을 데리고 가슴에 모여오리라.

그러다보면 때에 따라서는 너울거리던 감정의 잎들도 떨어질것이고 황폐한 빈 들녘에 감추어진 가슴이 얼마나 허허로운가도 느껴질것이며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이 되려는지 어디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지도 희미하게나마 보여지리라.

나날이 녹음이 독을 뿜어대는 푸르름의 계절이다.

이 녹색의 계절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 마음 달려간다면 분명 정신적인 성숙도 보태어지리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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