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싱발언'과 모욕罪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연극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관람중에도 자신이 직접 무대 에 올라가 연기를 하는걸 즐겼다는데 어느날 한 평론가가 연극배우를 비판하는 글을 쓰자 명예훼손혐의로 잡아들여 종신형에다 귀를 짜르고 1만 파운드의 벌금까지 물렸다. 연극배우를 비판한 것은 가끔 배우가 되는 여왕을 비판한 것이 되고 그것은 곧 여왕의 명예를 모욕한 것이라는게 중형선고의 이유였다.

중형의 법적 근거는 '국왕과 귀족, 행정관을 비방하고 모욕하는것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명예훼손이 된다'는 'Seditious libel'로 규정. 이 악법은 훗날 피터 젱거라는 인쇄공이 총독 을 비방하는 글을 썼다가 모욕과 명예훼손죄로 구속된뒤 '비방내용이 사실인데 왜 벌받아야 하느냐'는 유명한 '해밀튼 변론'에 의해 최초로 무죄선고가 내려지면서 사라졌다. 우리 형법 도 이 '피터 젱거 사건'의 판결 정신에 영향을 받아 '명예훼손의 내용이 사실이고 공익적이 면 책임이 없다'는 주의를 따르고 있다.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의 '미싱 발언'을 놓고 명예훼손죄 적용을 검토해오던 검찰이 갑자기 모욕죄 적용쪽으로 급선회 하려한데는 그러한 법논리의 부담때문이 아닌가 보여진다. 현행 법상 김의원을 허위사실 적시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구속시키려면 김대통령이 말바꾸기나 거 짓말을 한번도 안했다는 사실을 증명 해내야 된다.

그러나 그 동안 많은 정치적 발언 과정에서 정계개편 불가 번복등 일부말 바꾸기나 사실과 다른 발언이 전연 없지는 않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공소유지가 어려워질 위험이 크다. 그렇 다고 말바꾼 내용은 사실이되 명예를 훼손 시킬 악의를 가지고 비방한것은 잘못이란 법리에 의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경우는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공식 적으로 시인하게 돼버린다. 더구나 김의원쪽이 정치지도자의 말바꾸기나 거짓말을 비유적으 로 비판한 것은 정치풍토개선이라는 공익적인 의도에서 좀 과격하게 비유한 것일뿐 명예를 훼손할 고의나 악의가 없었다고 주장할 경우 처벌이 어렵게 될수도 있다. 이래저래 검찰은 모욕죄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친고죄 당사자인 김대통령으로부 터 고소의사가 담긴 위임장을 받아낼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전세계의 이목이 한국경제회생 의지쪽으로 쏠려있는 경제환난속에 난데없이 대통령이 입가벼운 야당 국회의원을 상대로 '말시비 고소'를 하는 볼상 사나운 상황을 만든셈이 된다. 요즘 대구에는 누가 한나라당 쪽을 비판하거나 국민회의쪽을 두둔하면 이단자쯤으로 치부하 는 외골수 분위기가 있다는 말들이 있지만 감히 말하건데 한나라당 김의원의 '미싱…'발언 은 한마디로 경박했다. 며칠뒤면 대통령이 외자유치와 경제신인도 회복을 위해 방미길에 올 라야 하는 급박한 경제 상황중에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 외자유치를 호소하 고 국가신용을 설득하러 가는 사람의 입술이 자기 나라안에서 '거짓말쟁이 입술'로 비유되 고 있고서야 나라밖에서 무슨 신뢰를 얻어 오겠는가. 빈손으로 돌아오면 남는건 공멸 뿐이 다.

일단 전국민이 다수결로 지지해서 뽑았으면 밉던곱던 어느정도 일해볼 말미를 주고 밀어줘 야 옳다. 아직은 영호남 어느쪽이든 나라를 위해서 누가 좋고 싫고를 따질 감정따위는 다 벗어던져야 할때인 것이다. 검찰이나 청와대도 시비의 감정을 벗어 던져야하는 것은 마찬가 지다.

오욕에 대항하는 최선의 무기는 권위나 법이 아니라 인내와 멋과 용기라는 헤르만 헷세의 말을 김대통령도 읽으셨으리라 믿는다. 진정 나라를 걱정한다면 명예를 지키려는 시비보다 모욕에 대한 인내를 보여 줌으로써 나라의 분위기를 지키는 큰 가슴을 보여주길 바란다. 지 금으로서는 누구든 감정적인 집안 정치 싸움에 집착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더욱 혼란하고 위태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민과 조국을 모욕하는 일임을 알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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