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산을 먹고 살았다.
산자락 다락논을 일구고, 산이 흘려내린 물을 받아 마시며, 그 속에서 산의 정기 들이키며산처럼 살아왔다. 그래서 산맥은 산의 맥이 아니라 인간의 맥이라 불러도 좋으리라."산이 고맙겠네요?". 소음 때문인지 못들은 모양이다. 다시 물으니 멀뚱거리며 "고맙긴 뭘,그냥 산 파먹고 사는 거지…"란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 팔공산(대구 '팔공산'과 한자까지 같다) 자락. 소백산맥의 돌을캐내 다듬어 파는 장수석기(대표 최병옥). 산의 곱돌(각섬석)로 솥 냄비, 돌구이판, 약탕관을만드는 곳이다. 산맥의 '뼈'를 캐내니 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대답은그게 뭐 대수인가?라는 반응. '무아'(無我)인가 무심(無心)인가?
"3대째여. 근동에서 3대째 하는 것은 우리뿐이지라". 7대조 할아버지가 처음 정착했고, 그가은신하며 돌을 캐 다듬어 약탕관을 만들어 임금님께 진상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 돌을 캐 상업화 한 것은 할아버지때 부터.
장수의 곱돌은 입자가 치밀하고 단단하며 불에 잘 견딘다. 습기도 잘 흡수하고 열적외선도낸다고 한다. 그래서 돌솥으로 돌구이판으로 이름 높다. 돌을 크기에 따라 잘라, 재단하고갈고 닦고 씻고 검사하고, 모두 8단계를 거친다. 어른 두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안을수 있는원석도 30초만에 두부 자르듯 반듯하게 자른다. 돌톱날이 들어가면 '컹!'하다, 잘려 나갈때는 '텅!'하는 소리를 낸다. 흡사 돌이 내지르는 단말마같다.
장수에는 모두 7군데의 곱돌 석기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계내면 명덕리엔 차돌광산이 있고, 계내면 장계리, 반암면 국모리엔 곱돌공장이 있다. 그중 가장 오래 된 곳이 장수석기.최병옥씨의 말을 들으면 과학기술의 연대기를 보는 듯 하다. 돌을 가는데 할아버지(최순룡)는 수차를 돌렸고, 아버지(최영식)는 석유발동기를 돌렸고, 이제 그 손자는 전기로 돌린다.소백산맥에 뿌리를 박고 삶을 갈고 살아온 3대다.
장수(長水)는 이름 그대로 물의 고장이다.
장수천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금강과 섬진강 줄기가 군을 휘감는다. 계내 계남 천천등 지명도 대부분 물과 연관된다.
장수읍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8㎞정도 19번 국도를 따라가면 소백산맥에서 노령산맥으로이어지는 산줄기가 있다. 이를 수분(水分)재라 하고, 재 옆에 있는 마을을 수분마을이라 한다.
이 재 꼭대기에 외딴집 한채가 있었다. 비가 오면 이 집 몸채의 용마름을 경계로 남쪽으로떨어지는 지붕물은 섬진강으로 흐르고, 북쪽으로 떨어지는 지붕물은 금강으로 흐른다. 그래서 물을 가르는 마을, 물을 가르는 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집은 없어지고 장수군은샘(뜸봉샘)을 금강의 발원지로 개발중이다.
장수는 동서가 20㎞, 남북이 44㎞인 작은 군이다. 해발 4백30m.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가랑이'에 나직이 얹혀 있는 마을이다. 일찌기 장수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 높다.
안동을 관향으로 한 권씨가 이곳에 집성촌을 이룬 것도 풍수때문이었다. 산서면 오산마을은안동권씨 70여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풍수학자들은 이 곳 오산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와우형(臥牛型) 안산(案山)이라고 부른다. 꼴봉 안산 딴동뫼 여의동뫼 점산의 다섯개의 작은산에 둘러 싸여 오산이다.
이 마을에는 아직도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분이 있다. 바로 권희문옹(81). 일곱 항렬의 70여가구가 한 마을에 모여 사는 이곳 오산마을에서 유일하게 직계 4대가 한집에 살고 있는대가족의 호주다.
"여기에 뿌리를 내린 것은 3백년도 넘어. 12대조 때부터니까". 권옹의 12대조 권인(權寅)은거창현감으로 임진왜란을 맞아 운량관(식량보급관)으로 활동하며 이 길을 따라 서울을 오갔다. 서울과 경상도를 잇는 이 관로를 수년간 통행하면서 당시 수목이 울창했던 이 곳 오산을 눈에 익혀 두었다. 그러다 관직에 염증을 느끼고 아예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출처가 그렇다보니 보잘 것이 있고 예절이 욕 얻어 먹을 정도는 아니여". 유교전통이 남달라 이 마을에선 촌수에 의한 호칭이나 예절이 엄격하다.
"대저 인간이란 산을 끼지 않고는 살수 없는 벱이여. 산을 깎아 먹는 거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걸 몰라. 인간사가 다 그래". 고령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언사와 광채나는 눈빛의 꼿꼿한 시골선비에게서 산의 향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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