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린중국 닫힌 중국-무저항·무관심

대륙기질보단 보신주의, "문화혁명 암흑시대 탓"

외국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베이징의 산리툰(三里屯)거리. 가로수 숲과 서구풍의 작은 찻집, 선물가게, 쇼핑을 즐기는 외국인들로 활기가 넘치는 거리이다.

한번은 그 거리에 갔다가 차들이 뒤엉켜 엉망이 된 광경을 보았다. 길 한복판엔 60대의 할아버지와 열살남짓한 소녀가 서 있었고 어느나라의 대사관차인 듯 사(使)자 번호판의 아우디 한대가 어중간하게 서 있었다. 구경꾼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할아버지가 자전거뒤에 손녀를 태우고 가다 아우디차에 살짝 부딪쳐 손녀가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치료비조로 상대방에게 많은 돈을 요구했고 억장이 막힌 외국인이 차를 내버려둔채 줄행랑을 쳐버렸다는 것이었다.

소녀는 다리에 가볍게 찰과상을 입었을뿐 멀쩡해보였는데 할아버지는 "큰일났다. 손녀가 다쳤다"며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그들은 벌써 두어시간넘게 그 자리에 서있다고 했다. 노인은그 사건으로 단단히 한몫 챙길 심산인듯 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들때문에 교통흐름이 엉망진창이 됐는데도 아무도 노인에게 따지거나항의하지 않고 차로 하나로 굼벵이처럼 기어나가는 것이었다.

더더욱 이해가 안되는 것은 꽁안(公安:경찰)들이 그 광경을 뻔히 보고도 제재를 하지 않는것이었다.

중국에선 뭔가에 항의하거나 따지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기차역의 입석승객 대합실에서 대나무 막대기를 든 역무원들이 마당을 쓸듯 승객들의 머리를 난타해도 항의하는 사람이없고, 기차나 비행기가 연착을 하고도 사과 한마디없어도 환불해달라는 둥 항의하는 사람이없다. 중국사회과학원에 방문학자로 왔던 서울대 박한제 교수는 기차여행을 하던중 한 지방역에서 기차가 6시간을 이유도 알리지 않은채 정차했다고 했다. 자기는 속이 터질것 같았는데 다른 중국인들은 느긋하게 간식을 먹으며 기다릴뿐 불평한마디 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사회문제화될 정도로 심각해졌지만 중국인의 무관심도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베이징의 순환도로인 쓰환루(四環路)에서 두 남자가 웃통을 벗은채 혈전을 벌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교통은 마비돼버렸지만 모두 팔짱을 낀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좀처럼 화를 안내고 싸우지도 않지만 한번 싸웠다하면 물불을 안가린다. 대도시택시운전수들은 강도에 대비해 쇠파이프 하나씩을 무기로 갖고 다니는데 싸움이 붙었을경우쇠파이프로 상대를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팬다. 사람들은 구경만 할뿐이다. 교통사고로 피를흘리며 쓰러져 있어도 구경만 한다.

자신과 직접 관계된 일이 아니면 절대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요즘 중국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원의 한 여교수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한가지 예를 답으로들려주었다. 어떤 택시운전수가 뺑소니차에 치여 쓰러진 한 노인을 병원에 실어주었는데 의식을 회복한 피해자가 엉뚱하게 자기를 도와준 운전수를 가해자라고 진술, 증인을 확보하지못했던 그 운전수는 결국 치료비와 위로금을 물기위해 생계수단인 차와 집까지 팔아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그 교수는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간 무슨 곤욕을 치를지 모른다고 말했다.

부당한 일에 항의하지도 않고, 남의 일에 무관심한 그들의 사고방식은 일면 매사 좁쌀처럼따지지 않는 대국적 기질탓도 있지만 알고보면 체질화된 무관심과 체념, 보신주의가 뿌리깊이 숨어있다. 중국지식인들은 10년간 중국을 암흑시대로 만들었던 문화대혁명탓이라고 말한다. 말 한마디로 자칫하면 감옥행에다 목숨까지 잃어야했던 그 시절엔 무조건 고개를 수그리고 자신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었다.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누가 어떻게 되든 자기를 드러내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는 보호본능이 의식 깊숙이 박혀있다.

중국당국에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헌혈자들을 매스컴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등 중국인의 의식구조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워낙 피해의식이 뿌리깊어 빠른 시간내 큰 변화를 보일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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