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IMF시대 한여름밤 풍경

장마기에도 불구하고 한낮의 불볕더위와 무더운 열대야가 반복되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는가운데 여름밤을 즐기는 생활인들의 모습이 양극화되고 있다.

고금리로 더욱 살기 좋아진 상층부는 '반갑다 IMF야'를 외치며 최고급 레스토랑이나 양주집, 물좋은 나이트클럽을 휘젓고 있지만 직장이 흔들리고 주머니가 얇아져 졸지에 하층부로전락한 중산층 넥타이 부대들은 재래시장 등 싸고 부담없는 난전으로 몰려간다.중소 사업체를 꾸리는 김성한씨(43)는 접대차 자주가던 호텔바나 방석집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일주일에 두어번 칠성시장을 찾는다. 이곳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노라면 이미 여러번마주쳐 얼굴을 아는 또다른 넥타이부대들이 삼삼오오 등장, 땅에 떨어진 경기와 회사의 앞날을 점치며 우울한 하루를 탁주잔으로 접는다.

과메기가 나오던 때부터 직장인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는 칠성시장 지짐전 김소분아주머니(48.대구시 서구 비산4동)의 말은 넥타이부대의 시장출현이 IMF이후 경기침체와 무관하지 않음을 반증한다.

"작년에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갈 준비를 하고, 택시잡기에 분주했는데 요즘은 버스 끊어지기 전에 가야한다고 밤10시30분만 되면 다 일어서요. 그나마 시내에 나가는 사람도 확 줄어들었어요"

홍익대에 다니는 허진형군(20.대구시 수성구 만촌2동)은 IMF시대 여름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의 한여름밤 정취도 기성세대들처럼 양극화되고 있다고 들려준다. 상류층은 기본료(맥주4만원, 양주 12만원)를 주고서라도 부킹이 잘되는 ㅍ, ㅂ, ㅈ 등 나이트클럽을 전전하지만용돈이 팍 줄어든데다 시간제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힘들게 된 대학생들은 캠퍼스 인근의 싼당구장 소주방을 찾아헤맨다. 10분당 게임료가 1천2백원에서 10분당 1백~2백원까지 폭락한대학가 당구장이 배고픈 대학생들의 놀이터인셈. 입대를 한다거나 생일인 친구(소위 물주)가생기면 그날 소주방이나 동동주 비용은 일절 내지 않아도 된다.

맘에 드는 셔츠 한장 마음대로 구입하기 힘든 여대생이나 주부 가운데는 윈도쇼핑으로 끝내거나 구입의사는 없으면서도 그냥 한번 입어보는 것으로 옷사기 욕구를 잠재우기도 한다.3일 저녁 중앙도서관 출입구에서 경북대 병원쪽으로 난 도로의 인도변. 가로수가 늘어선 보도위의 구경꾼들이 둘러선 가운데 '춤'이라면 일가견이 있다는 중고생들이 최신 댄서를 선보이느라 열기가 뜨겁다. 소위 중도파(중앙도서관파)라 불리는 이들 '1318춤꾼' 속에서 세계적인 댄서가 나올지는 두고 볼일.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앞이 아니면 대봉교 밑 둔치에서 춤으로 승부를 거는 청소년층도 따로 있다.

김민정씨(23.IMS인테리어디자인연구소)는 직장이나 가족단위로 노천카페를 즐기는 이들도많다고 들려준다. 경북 칠곡 동명 일대에 자리잡은 노천카페의 모닥불에서 감자나 고구마를호일에 감아 불속에서 직접굽는 와일드쿠킹으로 여름밤을 보내는 것도 멋있고, 멀리 가지않더라도 신천 둔치 잔디밭에서 강바람을 쐬며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내고 내일을 위해 재충전하는 가족들도 정겹다.

실직자들은 그래도 겨울보다 요즘이 한결 견디기가 낫다. 팔공산 야영장에 캠프를 치고, 휴가철을 보내는 캠프족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한 실직자는 "좀처럼 회복기미가 없는 경제에신경을 곤두세우고, 매일같이 가족들 얼굴을 맞대기가 민망했는데 자연속으로 훌쩍 떠나오고 나니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다. 여름 한철 자연속에서 실직의 아픔을 달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며 실직 노숙자들이 여름 산이나 계곡으로 몰리고 있다고 들려준다. 〈崔美和.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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