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세계화시대 균형감각

권기홍(영남대교수 경제학과)

세계경제의 재편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곧 세계질서의 재편, 인류문화의 대전환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이 21세기와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가시화됨으로써 호사가들을 더욱 흥분시키고 있다. 세계화· 정보화로치장된 설익은 구호들이 어지럽게 난무한다.

한국을 세계금융의 메카로, 제2의 홍콩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린다. 국경이 없어지는 마당에 국가경제의 자기완결성 따위는 구시대적 발상일지 모른다. 철저한 국제분업의논리에 입각한다면 이제 제조업은 걷어치우고 세계화된 탈산업사회의 정보서비스 기지로 탈바꿈하자는 주장이 그럴듯 하다.

70~80년대만해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었던 팍스아메리카나 가 화려한 부활에 성공하고 있다. 적어도 당분간은 미국적 가치체계의 우월성을 의심하기 어려워 보인다. 너도나도 미국흉내내기에 급급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당당하게 제기되고 있다. 시장만능, 경쟁만능의 사고로는 지극히 당연한 효율적 처방일 수 있겠다.새 천년에 대한 전망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천년에 걸친 인류문화의 변화폭을 전망한다는것은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다. 21세기에 대한 전망이라면 이건 문제다. 21세기는 아무리 세계화가 진전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단위국가 또는 국가그룹간의 경쟁이 세계질서의축으로 작동하는 세기일 것이다. 세계정부라도 성립한다면 모를까 철저한 국제분업이란 결국 강자의 논리일 수밖에 없다. 일정 규모 이상의 단위국가가 일정 수준의 자기완결성을 갖추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제조업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농업이 겪었던 비중 감축의 역사가 그대로 되풀이 되기에는 농업과 제조업의 특성이 너무나 다르다. 탈산업화 과정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결정적으로 그리고 급속하게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21세기에도여전히 제조업의 중요성이나 비중은 무시될 수 없을 것이다. 정보산업· 지식산업· 금융산업등을 중심으로한 서비스 산업의 고부가가치 창출은 제조업 분야의 건강한 존재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은 이 시대 최대의 화두는 시장 이다. 외환위기로 시작된 우리의 경제위기도 그 본질은 결국 시장의 위기다. 따라서 위기극복의 핵심과제 또한 제대로 된 시장질서의 형성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시장이 하나의 모습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시장은 다양성과 창의성이 존중되는 경쟁의 장으로서 그 구체적 모습은 사회적 진화의 결과일 뿐 나라마다 다른 제반 여건과 지향성에 따라 제각각이다. 소수 엘리트를 중심으로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는 미국식 시장이 시장의 전형은 아니다. 시장은 곧 문화다. 미국식 시장의 역동성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이식될 수 있는 것인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다.

우리네만큼 유행에 민감한 경우도 드물다. 세계화· 정보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곧바로 민족국가의 소멸이나 제조업의 무가치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장적 경쟁의 원리 또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리일 뿐 구체적 시장질서를 어디서 복제해다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이 발흥할 때는 일본모델을, 미국이 발흥할 때는 미국모델을 베껴쓰겠다는 천박한 문화수준으로는 영원히 우리의 시장질서를 확립하지 못한채 3류국가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위기와 전환의 시대일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균형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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