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중음악 장르여행-컨트리와 블루스

컨트리(Country)가 미국 백인들의 민속음악이라면, 블루스(Blues)는 19세기 중엽 미국 흑인노예에 의해 만들어진 가곡이다. 컨트리가 밝고 경쾌한 리듬이라면, 블루스는 흑인 노예의 '한'이 서린 음울하고 느린 곡이다.

컨트리의 진원지는 내시빌과 루이지아나 등 미국 남동부 지역이다. 당초 '힐빌리(Hillbilly)'라고 불리어진 컨트리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컨트리 & 웨스턴'(Country & Western)으로바뀌었고, 1970년대에 이르러 단순히 컨트리로 약칭됐다.

해방후 미군에 의해 전해진 컨트리는 55년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가 시초라고 할 수있다. 61년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그 뒤를 이었다. 60년대 서수남이 리드 싱어로있던 '웨스턴 주빌리'라는 컨트리 쇼단체가 유명했고, 서수남과 하청일이 듀엣으로 활동하며'팔도유람'으로 컨트리의 토착화를 꾀했다. 70년대 이후 김홍철의 음악이 힐빌리와 유사했고, '고아'의 오세은도 '블루 그래스 연주주법'을 개발해 이양일의 '컨트리 그린'에서 활동했다.

80년대 초반 컨트리의 두가지 주목할 '사건'이 일어난다. 81년 이정명이 컨트리의 심장부인내시빌의 송콘테스트에서 '미시즈 심슨스 레이트 러브'로 입상하고, 82년 작곡가 방기남이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션(CMA)의 정회원이 됐다. 컨트리의 능동적 수용과 국제무대 진입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당시 서유석, 이장희, 장계현은 컨트리 번안곡들을 유행시켰다. '기타한닢 동정두잎'의 이재성, '내가 본 마지막 그녀'의 김목경 등이 컨트리 스타일이었다.90년대 컨트리는 현저하게 퇴조했고, 그나마 이예린의 '포플러 그늘 아래서', 탁재훈의 '내가 선택한 길',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 등이 명맥을 유지했다.

블루스는 사실상 40년대 도입돼 80년대 후반에 유행한 장르다. 흑인영가가 집단적 노래라면,블루스는 개인적인 고독과 삶의 투쟁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즉, 블루스는 개인적 고독,괴로움과 슬픔, 그리고 절망감에 빠진 이들만이 부르는 1인칭의 노래다. 음악형식은 '블루노트 스케일'(8음계에서 내림 마와 내림 나를 반음씩 내려 사용하는 형식)의 멜로디를 이루고 있다.

블루스는 38년 '상하이 부르스'등 일제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해방후 대중가요의 한 장르로 정착됐다. 39년 이난영의 '다방의 푸른꿈', 41년 '선창의 블루스' 등이 일본식 블루스풍의 효시. 해방후 백설희의 '무정 부르스', 안정애의 '대전 부르스' 등이 주목을 받았다. 60년도미의 '소공동 부르스', 69년 배성의 '사나이 부르스' 등 일본풍 블루스는 트로트류 블루스의 전형이 됐다. 이는 트로트 가요에 멜로디를 블루스적 리듬에 얹은 편법을 사용한 것.트로트류 블루스를 극복하려한 포크 블루스(Folk Blues)는 70년대 통기타 가수 오세은과 양병집에 의해 시도됐다. 이정선의 '오늘 같은 밤'과 78년 '건널수 없는 강' 등이 포크 블루스의 본격적 틀을 갖췄다. 엄인호, 이정선·이광조 그룹 '풍선'에 한영애가 동참해 '신촌블루스'를 탄생시켰다. 80년대 주현미는 '눈물의 부르스' '신사동 부르스' '영동 부르스'등으로트로트류 블루스의 명맥을 이었다.

86년 한영애는 '건널수 없는 강'으로 블루스의 기본요소인 '블루 노트 스케일'을 사용했고,명혜원의 '청량리 블루스'가 합세해 흑인풍 블루스가 유행했다. 이선희 '나 항상 그대를',사랑과 평화 '울고 싶어라', 양수경 '바라볼 수 없는 그대', 신촌블루스 '그대없는 거리'등이한때 80년대 블루스 바람을 일으켰다.

일방적으로 유입된 백인과 흑인의 음악인 컨트리와 블루스는 결국 한국적 대중음악으로 승화하지 못한채 사실상 명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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