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대음악의 태동

장엄하고 신화적인 이미지로 가득찬 '바그너'의 음악은 19세기를 온통 압도했다.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바그너숭배자'(Wagnerian)로 그의 마력에 사로 잡혀 있었다. 수많은 음악가, 시인, 화가,건축가들에게 있어 당대 최고의 천재 바그너는 온통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20세기라는 새로운 분위기는 그들이 배우고 동화되려했던 교본격인 바그너를 밀어내고만다.

20세기 음악의 태동. 그것은 바로 '탈(脫)바그너'였다. 드뷔시, 말러, 스크리아빈,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슈트라우스, 라벨, 시벨리우스, 라흐마니노프…. 전 유럽을 감싸고 있던 바그너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한 새로운 인물들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동시대 수많은 예술가들이 '새벽'으로 오해하고 추종했던 바그너(1813-1883)는 이제는 '아름다운 황혼'이었다.

끌로드 드뷔시(1862-1918). 흔히 인상파 음악을 대변한 진보주의자인 그는 20세기 음악의 개화를이끈 인물이었다. 그는 음향을 초월한 예술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랄까.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작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바다'처럼감각과 이미지에 의존한 새로운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리스신화의 장면이나 오후의 뜨거운 열기,말라르메의 전원시같은 관능적인 노곤함, 물고기의 번쩍임과 같은 감각적 이미지를 음악언어로그렸다. 드뷔시의 음악은 그것이 음악이기에 새로웠다. 1908년 3월 드뷔시는 그의 편지에 이렇게적었다. "예술비평가 족속같은 멍청이들이 부르는 신통찮은 용어인 인상주의(Impressionism)와 같은 뭔가 다른 것을 나는 시도하고 있다…"고.

드뷔시의 음악은 20세기 서양음악에 큰 영향을 준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그는 음악가들이 화음과음조, 선율에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방법상에 혁명을 몰고왔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1백년전그들이 들었던 것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것이었다. 우리는 분명 드뷔시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부정할 수 없다.

1900년대는 대단히 특수한 시기였다. 관현악단의 갑작스런 부상등 마치 열병처럼 빠르게 진행된예술의 변화속도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말러의 교향곡, 레거의 실내악곡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여기에다 1908년 쇤베르크의 '무조주의 음악'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20세기 음악의 이같은 변화는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에서 먼저 나타났다. 1881, 1882년 각각 창단된보스턴심포니와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등 많은 관현악단들이 1900년대 들면서 음악의 중심부로 급속히 진입했다. 동시대 작곡가들은 '음악이 인간정서를 표현하는 언어이며 음악의 최상의형태인 교향곡은 인간의 정서적 체험의 일대 파노라마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위대한 거장들이오케스트라 지휘봉을 잡자 관현악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진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지휘자였다. 피아노와 작곡을전공한 그는 19세기 보수주의자들이 득세한 19세기 분위기에서는 거장이 될 수 없었다. 비엔나오페라 지휘자가 결국 그의 길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말러는 바그너 오페라가 갖춘 전통적인 공연방식을 과감히 도려낸다. 가수와 연주가의 위치를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레퍼토리를 넓혔으며 새로운 작품을 자주 연주하는등 20세기 음악에 있어 중요한 발걸음들을 뗀 장본인이 바로말러였다. 19세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 신세기에 비로소 꽃을 피운 거장 말러는 음악가들에게 종종 이렇게 대답했다.

"전통은 게으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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