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거세당한 듯 기운을 잃고 서쪽으로 기울던 초여름 경북여고 교문 가까이서였다. 87번 버스에서 내린 키가 후리후리한 반팔옷 차림의 한 노신사가 한길을 건너 대구은행 남문시장 지점 근처 노점들이 지저분하게 늘린 길을 걷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걱정하며 걷는 그의 귀를 강하게 울린 굴찍하고 꺽꺽한 말소리가 있었다.
"그 때 니는 그 ×× 찍었지?"
흥분된 목소리라 그는 걸음걸이를 늦추었다.
"니는?"
"그 ××들,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고…"
사이소. 사 보이소 하는 소리들 때문에 그 다음 이어진 말은 흐려졌지만 화자들의 차림새만은 뚜렷이 알아볼 수 있었다. 60에 가까운 뚱보 투우사형 여인이었다. 돈주머니도 겸한 때묻은 앞치마로 보아 틀림없이 노점상으로 보였다.
그 때가 마임 정치한다는 자들이 이러저리 당적을 바꾸어 선거민에게 소환권이 있어야 한다는 말들이 무성할 때라 이어진 말들은 들으나마나이었다.
풀뿌리 민심의 자유 방담에 습관적으로 모종의 공포를 느끼면서 노점상 물건들을 피하여 이리 비틀 저리 기웃 걷는 스스로의 꼴이 우스웠던지 노신사는 소리 없는 황소 웃음을 웃으며 고서점 골목으로 사라지더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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