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생존과 생활

일제시대에서 60년대 중반까지 우리네 대다수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삶이었다. 그때의 부모 마음은 한결 같았다.

어떻게 하든지 자식들을 살아남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언젠가 그들은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것이라고 꿈꾸어 왔다. 그후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부모님이 희구했던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사람들은 선진국 진입을 자축했고 한국 만세를 외쳤다. 이제 우리도 생존이 아닌 생활을 해야겠다고 서로의 입을 모았으며, 삶의 양(量)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質)이 문제라고도 했다.거리에는 자동차가 넘쳐나고 외국의 각종 정보와 제품이 무분별하게 들어왔다. 큰 집, 큰 차, 비싼 것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척도인 양 사회는 환상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이제 우리는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날과는 모든 것이 변했다.

개인의 강인한 의지도 약화되었고 정신적 지주였던 부모님도 떠났다. 국민적 합의도 그 때와 같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풍요로움을 맛본 우리네의 의식과 삶의 방식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영국의 수상 처칠은 중학교 때 영어에 낙제점을 받아 3년이나 진급을 못했다. 그런 그가 먼 훗날옥스퍼드 대학에서 축사를 하게 되었다. 처칠은 우레같은 박수를 받아가며 연단에 걸어나왔다. 청중은 숨소리를 죽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포기하지 말라(Don't Give Up)' 이것이 그의 첫마디이자 끝마디였다.

분명히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오늘이 내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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