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는 끝간데 없이 펼쳐진 비닐하우스의 바다. 세계 최대의 하우스 단지이다. 전국 참외의 35%를 생산하는 곳. 1만8천 농가 중 1만여 농가가구가 참외 하나로 생업 삼는다고 했다.
"참외 농사 지어 대구에 집 한채 장만 못한 사람이 드물지요. 대도시로 유학 보낸 학생도 부지기수입니다. 수확 끝나고 일주일 이상 여행·바다낚시 떠나는 사람도 많아요" 자신도 참외 농사로연 3천만∼4천만원의 소득을 올린다는 류태호(43)씨. 성주군청 원예특작 담당(계장)이기도 한 그의 어조에는 부촌 사람다운 여유가 넘쳤다.
농가당 평균 재배 면적만 2천여평. '금싸라기' 참외 한 상자(18kg)가 4만~5만원을 호가하다 보니이상한 일도 벌어진다고 했다. 얼마전 쓰레기 매립장 반대시위 중 하우스 보온덮개를 덮는 시각이 되자 농민들이 뿔뿔이 자진 해산했다는 것. 우스갯소리 같은 실화.
94년도부터 일본에 매년 7t의 참외를 수출하고 있는 성주읍 대흥리 참외 수출단지를 찾았다. 낙엽·톱밥에 효소를 섞어만든 유기질 퇴비 특유의 냄새가 진동하는 하우스. 15년 경력의 참외 농군김상곤(56)씨가 순을 고르고 있었다.
"49농가가 호당 평균 2천600평의 참외 농사를 짓습니다. 사시사철 25~35℃를 오르내리는 하우스속에서 하루 7시간씩 일해야 하는 수고를 생각하면 한해 조수익 6천만원 정도는 그리 많은 것도아니지요"
그의 셔츠 주머니에서 빠끔 머리를 내민 휴대폰이 꽤 인상적이다 싶었다. 무쏘 지프차가 주민들의 유행을 타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초전·벽진면 국도변엔 1층을 농자재 창고와 차고로 꾸민억대 2층 양옥들도 드물잖게 눈에 띄었다. 집을 대구에 두고 성주로 출퇴근하며 참외농사 짓는이른바 '출입경작'이 점차 늘고 있다고도 했다.
"대부분 휴대폰을 갖고 있으니까 일하다 자장면을 시켜 먹고 커피도 자주 주문해요. 참외 수확기땐 인근 무도학원에 손님이 들끓지요. 군내 티켓다방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40여개나 돼요"운전기사 딸린 티코를 타고 차 배달 온 다방 아가씨의 말이 거짓이 아닌 듯 싶었다.
"4~6월 수확기가 되면 공판장을 중심으로 1천억원을 넘는 돈이 흘러 다닙니다. 대기업 수준이죠.앞으로도 당분간 참외농사 전망은 밝을 겁니다" 위탁 판매를 맡고 있는 참외농협 이익희(49) 전무는 지난해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참외 캔 음료를 권하며 "다음달에는 대지 3천여평의 전국 최대 규모 참외 공판장을 개장할 것"이라 자랑하기도 했다.
취재팀이 찾은 또다른 하우스촌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 인공 조명으로 딸기 생육을 촉진하는 전조(電照) 재배기술이 발달, 청도·안강(경주) 등 다른 지역을 제치고 여전히 딸기 집산지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 곳. 쌍림면 전역이 밤에도 온통 하우스 백열등으로 환했다.
"저는 딸기 농사를 1천800평 정도 합니다. 연 소득이 3천만∼3천500만원 되죠" 평생 딸기농사를지은 부친(67)에 이어 대학 졸업 후 11년째 같은 일에 매달리고 있는 이종호(40)씨. 인터넷을 통해 딸기 관련 정보를 얻고, 홍보용 개인 홈페이지까지 만드는 등 새로운 노력도 기울이고 있었다.부지런한 품으로 미뤄 '딸기농사는 13개월 농사'란 것이 헛말이 아닌듯 했다.
몇년전 한때 심각하게 제기됐던 '하우스병'을 막기 위해 설치된 '휴게실'도 새로운 풍경이었다.집에까지 가지 않고도 논에서 바로 밥을 짓고 식사·샤워 할 수 있게 만든 이동 가정. 하우스의좁은 공간에서 종일 쪼그리고 일해야 하는 농민들의 쉼터이자 사랑방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 겨울 식탁에 싱싱한 채소가 오르게 된 것은 순전히 비닐하우스 덕분이다. 불과20여년 전부터의 일. 이때문에 그 흰 색깔에 빗댄 '백색혁명'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하우스 농업은 도시인의 식탁뿐 아니라 농민들의 생활도 바꿔 놨다. 부농의 꿈을 이뤄줬고, 삶의 질을 높여줬으며, 알찬 자식 농사도 가능케 했다.
앞으로는 어떨까? 그러나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기에도 걱정은 자라고 있었다. 대가면용흥리에서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토마토 양액재배 유리 온실을 보여준 백철현(46) 성주 농업기술센터 참외기술 담당.
"참외 과잉 생산이 가격 폭락과 생산 위기로 이어지는 날이 언젠가는 올지 모릅니다. 성주의 기술이 다른 지역보다 10여년 앞섰다지만 시설은 오히려 그만큼 뒤졌습니다. 지금 시세가 워낙 좋으니 대부분 농민들이 아무 걱정도 대비도 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일부 선도 농가들은 미래에 대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재배 환경이 월등한 유리온실, 자동화·규모화된 시설, 연작으로 인한 토양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양액재배 같은 기술 도입 등이그것이라고 했다.
영농조합을 중심으로 무공해·고당도·고저장성 딸기 생산에 성공한 고령군 안림에서도 문제는드러나고 있었다. 겨울철 수막 재배에 필요한 지하수가 심하게 고갈되기 시작했다는 것. 따뜻한지하수를 비닐 사이로 뿜어 하우스 온도를 높이는 이 방식에 한계가 오면 난방용 기름 사용이 늘고, 생산비가 많이 들게 될 것은 뻔한 일.
"고령군은 토양개량을 올해 최대 역점사업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딸기밭의 흙이심하게 산성화되고 비료 잔류 성분인 염류의 축적도 심하다는 얘기입니다" 고령군청 구병수(33)씨는 또다른 걱정을 얘기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굽힐 수 없다는 각오를 내보이고 있었다. 6농가가 자동시스템 첨단시설로 8천평의 장미를 재배하는 고령군 성산면 화훼영농법인 휴게실. "하우스 농민이 쌀농사로 되돌아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수박·참외에서 장미로 바꾼지 3년 됐다는 김종수(36)씨는 "하우스 농업은 그것대로 연중 재배·수확 가능한 작물 쪽으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적자와 실패를 몰랐던 하우스 농업. 80년도보다 12배로 늘어난 경북지역 하우스. 힘찬 변화의 다음 단계를 모두들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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