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를 향해(11)국내외 전문가들의 시각

인류 역사상 20세기는 급변의 격동기였다. 전통적 인습과 관행이 그 빛을 바래고, 현대적 감각과담론이 현란한 색채를 뿜어대었다. 이념적 대립과 실천적 대결은 전쟁과 테러를 통한 대량살상과무차별 살육을 낳았다.

물질적 풍요와 기술적 발달의 이면에는 신체적 굶주림과 정신적 갈증이 번져갔다. 종국에는 돈에대한 물신숭배와 힘에 대한 과잉동조가 결합함으로써 인간생명을 훼손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되었다.

인쇄·영상·전자 매체의 발달 탓에 세계의 중앙무대에서부터 구석진 관람석에 이르기까지 세상사 속속들이, 시장바닥에서 할 얘기와 안방에서 할 얘기가 구분됨이 없이,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인간이 저럴수가, 재앙이 저렇게까지,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숨소리를 죽일 따름이며 아예 무감각한 것이 상책인 양 살아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악의 구분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상식의 경계가 무너진 것은 아닌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 실태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가 대두했고, 합리적 사고의 한계를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지식인이 '해체'와 '탈현대'를, 과학자가 '혼돈'과 '불확실성'을, 정치인은 '제3의 길'을 부르짖고 있는 사이에, 세속 일에 얽매인 일반인들은 종말론과 개벽론에 몸을 기대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

한 세기 이전과 다르게, '내일 세상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은 한 그루 나무를 심겠다'는 말에 공감을 하는 사람을 이제는 찾기가 무척 힘들다. 단순히 세기말에 나타날 수 있는 과도기적인 사회현상으로 돌리기에는 그 심각성의 정도와 폐해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20세기의 큰 잔치는 끝나고 있지만, 사상적 포만감을 갖기는커녕 공허감과 허탈감을 맛보고 있다.인간의 자유의지는 거구화된 조직체에 억눌리고 공룡화된 사회체제에 짓눌린채 점점 왜소화되고있다.

그럼에도 우리 미래사회의 주인공이 될 신세대 대표주자들은 실제 현실을 직시하고 대면하기보다는 단말기 속의 가상현실을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우리 모두 외면하고 회피하기보다는 다시 한번 더 인간 실존의 내면적 근원을 파고 들어가야 할 때이다.

그렇게만 하면, 선과 악의 경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다만 불분명해진 것임을 용기있게 선언할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가치체계의 전면적 붕괴 또는 혼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원적 가치체계의 부조화가 문제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질서에 대한 염원은 모든 사람들이 항상 꿈꾸어 온 것이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고, 사회의 변동속도가 인간의 적응수준을 넘어설 적마다 주창되어 왔다. 그런즉, 세상 종말에의 두려움이나 신천지에의 열망은 20세기말에만 국한된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질문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천부적 선택에 대한 엄숙한 권리와 냉정한 책임을 담보해주는 사회적 보상체계가 요즘같이 요동칠수록,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확인시켜주는 사회적 의례(儀禮)가 필요하다. 원초적으로 인간은 큰잔치를 통해 타인을 의식했고 사회에 대한 공속감(共屬感)을 향유했다. 큰 잔치 그 자체가 자기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중들의 큰 잔치는 스포츠경기와 공연회 등인데, 이는 과거의 생산적이고 도덕적인 잔치의 성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나마 종교적 의례행위가 옛날의 잔치적 기능을 보유하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세속화의 마력앞에서 무기력한 면을 노출한지 오래다.

20세기가 거의 다 지나간 지금, 우리 모두에게 삶의 선택은 더 이상 선험적으로 규정되지 않고개방돼있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일상적 생활세계 속에 파편화한 인간 관계들을 끊임없이 조형해야 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부자이든 빈자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현대인은 자신의 직접적 경험을 의심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비로소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집단적으로 하고 있다. 개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구조적으로 강제된 고민이다. 이 현상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새로운 사회질서와 가치체계를 열어준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사회 각 부문에서 자기 기술(self-description)의 독자적 유형들이 자리잡아 가고 있는 만큼, 현대인의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은 중층적(重層的)이고 다기적(多岐的)이기 때문에사회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과정을 분출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의 재구성에 참여하는 행위주체가 역시 다원적이다. 고전적 의미의 국민국가뿐만 아니라, 각종 비정부 민간조직(NGO)과 비영리조직(NPO), 세계적 수준에서도 정부간 국제조직(IGO)과 초국적 기업(TNC) 등이 현대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행위자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보면, 21세기 사회는 부지(不知)의 세계, 미지(未知)의 영역이 결코 아니다. 수천년간 인류사회가 축적해온 지식과 지혜의 힘을 겸허하게 빌리기만 하면 바로 예지(叡智)된 세계, 감지(感知)된 영역이다.

아무튼 21세기는 인간의 모든 고통이 사라진 영원한 내세로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새로운 현실 경험 그 자체로서 인간 역사 속에 한 순간 등장하고 또 다음 세기를 위해 물러날 것이다.

틀림없는 사실은, 21세기가 사막에서 별을 보고 길(道)을 찾아 헤매는 시대가 될는지, 아니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땅에 들어서는 시대가 될는지,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매순간 선택에 달려있는 문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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