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향하여 숨가쁘게 달리고 있는 현재의 세계시간(world time)은 어디에 와 있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함의(implication)를 던져 주고 있는가?
현재의 정치적 세계시간은 사회주의 몰락과 군부권위주의 붕괴로 대변되는 민주화이며, 경제적 세계시간은 무한경쟁을 특성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세계화이다. 세계는 지금 '새 천년'을 화두로 바람직한 세계질서의 수립을 위하여 철학적 논쟁을 전개하는 한편,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체제정비와 전략모색에 부심하다. 이는 현재의 세계시간이 시대전환기로서 새로운 도전과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미래지향적 국가전략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기의 국운이 보장될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특히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책임져야 할 한국정치의 시간은 어디쯤 와 있는가? 불행하게도 한국정치의 현재시간은 고장난 시계처럼 20세기의 중반에서 정지하고 있다. 밀실정치·정치사찰·변칙통과·국회농성·장외투쟁·지역정치·정치보복·극한투쟁·철새정치인 등의 용어나 예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화 없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는 정치현실은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오늘의 세계시간은 한국정치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은 환골탈태의 자세로 한국정치문화의 고질적 병폐인 권위주의, 연고주의와 정실주의, 흑백논리와 반협상주의를 청산하고 명실상부한 민주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정치개혁을 과감히 추진하여야 한다. 한국정치를 20세기 중반에 묶어두고 있는 비민주적 정치풍토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21세기를 기약할 수 없다. 여야간의 흑백논쟁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동서화합과 남북통일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강력한 정치개혁을 통하여 정치권의 병폐와 거품을 제거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정치문화를 조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집권여당이 먼저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기혁신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여당의 자기희생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야당의 협력과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현재시간과 정치인들의 비민주적 행태를 고려해 볼 때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보다 요청되는 것은 국민의 성숙된 정치의식이다. 본래 정치란 한스 모겐소(H. J. Morgenthau)가 갈파한 것처럼 '권력의 획득과 유지 및 강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정치인에게 당리당략과 권력욕을 버리고 도덕군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상 무리이다. 따라서 민주시민의 지속적인 정치적 관심과 애정어린 비판만이 정치의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정치적 냉소주의와 무관심은 민주정치의 반동화를 초래하고 수준미달의 정치인들만 양산하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한국정치가 20세기의 중반에서 정지하고 있다면 그 절반의 책임은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흔히 우리는 정치인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정치수준이 국민의 의식수준과 크게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권력에 영합하지 않는 지조있는 지식인과 의식있는 시민단체, 정론직필(正論直筆)하는 언론의 역할과 사명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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