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과 공간 한국건축의 미학-(9)동산의료원 선교사 사택

대구시 중구 동산동 계명대 194번지 동산의료원내 한 모퉁이엔 미국의 어느 한적한 전원풍경을 연상케 하는 곳이 있다. 대구의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숲과 갖가지 꽃들, 잘 다듬어진 잔디정원으로 둘러싸인 그림같은 예쁜 집들.

1백여년전, 복음의 씨앗을 들고 머나먼 극동의 땅, 그중에서도 덥고 추운 분지의 땅을 찾아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살았던 사택들이다. 원래는 신명학교 부근에 에스더주택이니 아담스주택, 존슨주택 등 몇채의 선교사주택들이 있었으나 헐렸고 이후 1910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스윗즈, 챔니스, 블레어주택 등 3채만 지금까지 남아있다. 주택이름은 당시 이곳에 살았던 선교사들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당시 대구엔 서양식 건축물이라야 계산성당(1902년) 등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사방 둘러봐야 옹기종기 초가들속에 어쩌다 기와집들이 눈에 뜨였을뿐이었다.

영남대 김일진(건축공학과)교수는 "본격적인 서양식 주택이 전무했던 당시의 대구에서 이 선교사 가옥들은 서양인들의 건축 및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모델로서 경이적인 대상이었다"고 건축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88, 89년 대구시 유형문화로 각각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1899년 당시 대구 남성정에서 제중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문을 연 대구 최초의 서양식 병원(계명대 동산의료원의 전신)은 미국해외선교부 대구지부의 자금 지원으로 그당시 달성서씨 문중 소유였던 동산을 구입했다. 나지막한 구릉지인 동산은 마치 낙타의 등 모양을 닮았다하여 일명 낙타산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주변엔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서문시장 정도가 있었고 논밭들과 못이 있었다한다.

미국해외선교부는 이곳을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스테이션(본부)으로 삼기 위해 사택을 지었다. 건축에 관한 자세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김교수는 "설계는 미국에서 해왔고 건축시공은 중국인 모문금, 강의관이라는 사람이 중국인 벽돌공 등을 데려와 직접 붉은 벽돌을 구워 지었으며, 창문틀 등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자재는 미국에서 직접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대구엔 남성로 서성로 북성로 동성로 등의 지명이 말해주듯 대구시가지를 에워싼 읍성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당시 일제하의 참의원 박중양이 도시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읍성을 헐도록 했다. 네모나게 큼직큼직 잘라진 안산암(安山巖)의 돌벽은 선교사 사택과 계성, 신명학교 등의 주춧돌로 사용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들 사택은 당시에는 보기드문 지상 2층집에 지하실까지 두어 초가살이가 대부분인 당시 대구사람들에겐 가까이 갈 수 없는 꿈의 궁전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방 벽에 별장식없이 소박한 모양의 네모난 창문을 많이 달아 자연채광을 최대한 이용했다. 지붕은 신명학교내에 있었던 사택의 경우 한국식 서까래에 기와를 얹은 한·양 절충형이었으나 몇년후 지어진 스윗즈주택 등은 서구식 박공지붕(∧형 지붕)에 마름모꼴이 연속된 함석지붕으로 바뀌었다.

사택의 맨입구에 위치해 있는 스윗즈주택(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은 외관은 몸채의 기초를 대구읍성의 성벽돌을 이용, 차곡차곡 바른층 쌓기를 하고 그위로는 붉은색의 벽돌을 쌓아올렸다.

내부는 남쪽 우측에 현관으로 이어지는 베란다를 두고 현관홀을 통해 거실과 응접실을 직접 연결, 거실을 중심으로 침실, 계단, 욕실, 부엌, 식당 등을 배치했다. 붉은 벽돌과 올리브그린색의 창틀이 아담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챔니스주택(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은 동산의료원 7대원장인 하워드 마펫씨부부가 오랫동안 살았던 집.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의 지상 2층집으로 역시 대구읍성의 돌을 주춧돌로 하여 붉은 벽돌로 지었다. 2층 지붕밑방을 베란다처럼 지붕바깥으로 돌출시켜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남쪽에는 목조 베란다를 설치했다. 서쪽 중앙에 있는 현관에서 계단실이 있는 홀로 연결되고 홀을 중심으로 거실, 서재, 부엌, 식당 등이 배치돼 있으며, 계단실을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에 침실이 배치돼 있다. 특히 거실 중앙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페치카를 설치한 것이 눈길을 끈다. 방갈로풍의 외관에 전체적으로 장방형 창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챔니스주택 바로 앞에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잠든 선교사가족들의 묘지가 있어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맨 안쪽에 있는 블레어주택(유형문화재 제26호)은 전체적인 외관은 비슷하나 1층에 복도를 사이에 두고 벽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널따란 환기용 철망창이 쳐있고 복도 안쪽에 본채가 있는 이중구조를 갖고 있어 이채. 역시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특히 2층 창문의 경우 우아한 반원형 구조를 보이고 있어 여유로운 정취를 더해준다.

지붕은 박공면이 남북향과 서향지붕이 가자 형으로 교차, 지붕이 동서로 경사져 있어 숲속의 운치있는 오두막집(Shed)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로 설계됐다.

도심속의 전원주택인 선교사사택들은 지난 88, 89년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으며, 동산의료원측은 스윗즈, 챔니스주택을 오는 10월 동산의료원 1백주년 기념 의료선교박물관으로 개관할 준비를 하고 있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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