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개혁과 심리적 불안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의 국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한 크라인(Ray C.Cline) 교수는 국력측정시 두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 하나는 그 국가의 경제력, 군사력 등 수치로 계량화할 수 있는 유형적 재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국가의 정책을 국민들이 어느정도 믿고 지지해주느냐 하는 심리적 요소인 무형적 재산이라고 했다.

그의 측정방식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국민들의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수준에 따라 국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신뢰수준이 낮을수록 국민들의 심리적 불안이 커져서 국력이 저하된다는 뜻이다.

이 두가지 요인을 동시에 적용하여 1980년 전후 시기의 국력을 산출한 결과 소련이 미국을 제치고 1위였고 한국은 13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형적 재산만으로 계산하면 미국이 1위고 한국은 33위로 밀려났다. 이는 적어도 그당시 소련과 한국국민들의 심리적 변수가 국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것은 당시 소련사람들이 완전 공산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브레즈네프의 유토피아 프로그램을 신뢰한 결과이며, 한국은 박 전(前)대통령의 근대화 프로그램이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 것으로 국민들이 굳게 믿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정부를 지지했던 결과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볼때 현정부가 제2건국이란 이름아래 추진중인 개혁 프로그램도 과거의 근대화 프로그램처럼 성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과연 국민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감 아래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그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그러나 사회 전분야에 걸친 현정부의 개혁작업이 진행돼 가는 과정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무원, 회사원 할 것 없이 봉급자들은 '구조조정'이다 '정리해고'다 해서 매일 자기곁을 떠나는 동료들을 지켜보면서 과연 나도 여기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불안해 하고 있으며, 실업대란으로 표현되는 수백만명의 실직자들은 과연 언제쯤 새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같다. 직장인의 65%가 실직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16%는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도 할 수 있다는 어느 신문의 조사결과가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도, 정부가 가까운 시간내에 자신들의 불안감을 씻어줄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해줄 것으로 믿고 당분간은 더 기다릴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자기들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 이들의 심리적 불안감은 불만의 차원을 넘어 좌절감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로 발전할 경우 이들은 정부정책을 지지하기는커녕, 인도네시아 사태에서 볼 수 있었듯이 과격한 반정부적 집단행동도 불사하는 등 사회전반이 총체적 난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정부는 과연 지금의 개혁 패러다임이 과거의 근대화 패러다임처럼 대량실업 등을 해결하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정부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기능과 용량이 되는지를 심도있게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많은 국민들을 심리적 불안감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현실적 조치들을 취하지 못하면 현정부의 개혁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한 차원 더 높일 수 있느냐 하는 중요한 무형의 국력이며 지역감정과는 또다른 차원의 국민통합을 저해할 수 있는 국력의 변수이기 때문이다.

윤해수(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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