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한심한 풍수전쟁

조선조 고종 5년, 유태계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주도한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 분묘도굴사건은 당시 세계적 화제가 될만큼 세상을 떠들썩하게했다.

도굴에 가담한 인물들이 주범인 독일인과 안내를 맡은 조선인 이외에 프랑스인, 미국인, 중국인, 필리핀인 등 국제적으로 조직된데다 조선조 왕실의 맹신적 풍수신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때 오페르트의 도굴목적은 조선에 대한 통상개방 압력이었다고 한다. 시신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개방압력을 가하려했던 열강의 반인륜적 행태는 지금도 지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있은지 1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선진국 대열에 서려는 이 나라에 아직도 풍수신앙이 시퍼렇게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은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도는 느낌을 준다.

최근들어 풍수사상의 복고풍조와 더불어 묘지훼손 사건마저 꼬리를 무는 것은 국민의식의 공동(空洞)상태가 지난 세기말에 비견할 정도가 아닐지 염려스럽다.

롯데그룹회장 선고(先考)의 묘소 도굴 사건으로 왁자지껄한지가 며칠되지 않았는데 또 이회창 한나라당총재 조상묘 곳곳에 쇠막대기를 박아놓은 사건이 불거진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아직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같은 패륜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어도 그것이 지난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일어났다는 것은 신종 선거범죄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음식과 향응을 제공하고 돈봉투를 돌리는 타락도 모자라 상대의 조상묘까지 훼손했다면 선거범죄는 인간의 종말상황에 온 것이다.

민주시대에도 관직에 오르는 것을 왕조시대와 같은 영달로 여겨 멀쩡한 조상의 묘를 명당을 찾아 이장하는 지도층의 전근대적 의식이 이 지경에 이르게한 직.간접적 요인이 아닐까.

이러다간 선거전이 명당쟁탈전, 묘지훼손전이 되지는 않을는지.

(홍종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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