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이루는 기초단위인 가족들이 세기말적 변화의 급류에 휩싸여 있다. 생산·소비에서부터 자녀양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가족 울타리내에서 해결하던 '구(舊)가족'과는 달리 도시화·산업화를 거쳐 정보화로 접어든 '오늘날의 가족'은 혈연·친족·서열의 개념이 약해지고 다양한 인간관계·남녀평등·자아성취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부부·자녀·부모관계가 달라지고 있고, 가족가치관·생활주기·결혼관과 이혼관이 변모하고 있다.
21세기가 지향할 민주·평등·복지사회를 실현할 이른바 '신(新)가족'의 탄생이다. 사회변동과 맞물린 한국 신가족의 현주소와 바람직한 방향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 하나.
요즘 50~60대(代) 남편들은 아내가 커다란 솥에 국을 끓이는 걸 보면 간 떨어지는 소리가 쿵 하고 난다. 왜? 아내가 또 집을 비울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저 국을 다 먹을 동안 또 나홀로 집을 지키는 신세로구나"
70대 남편은 아내가 같이 나가자면 벌벌 떤다. 왜? 나가서 버리고 올까봐.
이 우스개는 숨막히게 돌아가던 직장생활을 자의·타의로 끝내고 늦게사 '준비없이' 가정으로 되돌아온 대다수 중년기 이후 남편들이 마주하게 되는 초라한 자화상(?)을 빗댄 풍자이다.
어느새 아내 앞에만 서면 초라해진 중·노년 남편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퇴근 후 시간'까지 반납하며 '기꺼이' 혹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가정을 외면하고 직장생활, 사회생활에 전념해오다가 어느날부터 직장에서 팽(烹) 당하고 힘도 없어지자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됐다.
가정은 이뤘지만 일과 돈에 매달려 가정생활은 하지 않았던 '남편 군상'(群像)들이 겪지 않을 수 없는 갈등이다.
이런 갈등은 결혼생활이 무르익으면서 가족주기의 변화에 따라 남편이 아내와 당연히 분담해야할 가사노동, 자녀교육을 외면하고 시간을 쪼개 부부간의 대화를 소홀히 한채 돈(경제력)과 위세로 권위를 휘두르던 사람에게 더 강하다.
계명대 여성학대학원 김정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대 가족의 라이프사이클상 나이가 들수록 남편들은 의존적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대구가정법률상담소 손기순소장도 "나이가 들수록 남편들이 사회활동을 그치고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소극적·비활동적으로 바뀌는 반면 아내들은 점차 능동적·활동적으로 변한다. 평소에 서로를 알려고 애쓰면서 감정이나 느낌을 나누지 않으면 부부관계는 결국 황혼이혼까지 불사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유교적 가족주의가 지배하면서 '하늘보다 높다'던 지아비론이 성행하던 과거에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던 부부관계의 변화이다.
이미 지아비론에서 친구같은 아내, 친구같은 남편이 된 것은 물론이고 일부에서는 막내아들 하나 더 키우듯이 남편을 대하는 '막내아들론'까지 등장한다.
대구가족상담센터 김순천소장은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시간이 많은 아내들이 시장, 시댁, 친정, 자녀학교, 이웃 등과 의미있게 인간관계를 맺고 집안에서 심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아내가 남편을 막내아들 대하듯이 하는 현상이 일고 있기도 하다고 들려준다.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사랑으로 막내아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는 아내에게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남편들은 설령 바깥일에서 실망이나 좌절을 느껴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부들이 비교적 긍정적인 느낌을 주고받거나 성숙한 사랑을 나누려는 자세는 약하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모임'(대표 표은이)이 지난 21일에 마련한 특강에 참석한 50여명 중 남편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 아내는 한두명에 불과했다.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 사는 주부 김영자(38)씨는 남편 이상권(40·경북대병원 의사)씨와 소소한 대화를 통해 부부지정을 쌓는다.
"피곤하지만 꼼꼼히 자신의 일상을 얘기해주는 남편에게 새삼 아내로서 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는 김씨는 "남편이 친구같다"고 말한다.
계명대 생활과학부 박혜인교수는 "이제 부부관계도 어느 일방이 이기고 지는 관계가 아니라 우애(companionship)가 살아있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대 사회학과 한남제 교수는 "현대 가족들의 부부간의 동료관계가 상당히 높아졌다. 부부간에 동료관계·우애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애정과 동질적인 취향(cogenial tastes)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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