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베네치아에서는 삼지창(포크)이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켰다. 베네치아공국의 수장이 그리스 공주와 결혼했는데 공주의 측근들이 삼지창을 사용해 식사를 하자 이제까지 고기를 손으로 집어먹거나 칼로 찍어 먹던 베네치아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 하지만 포크가 유럽인의 식탁에 널리 보급되기에는 그로부터 5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 예절바르고 절제있는 '사회적 동물'로 문명화되었는가? 현대 서구문명의 전형적인 모델은 언제 성립된 것일까?
국내에 완역 출간된 저명한 독일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1897~1990)의 '문명화 과정'(전2권·한길사 펴냄)에서 이같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지난 96년 제1권 '개인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본 문명화과정'이 번역된지 3년만에 국가의 형성이 개인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탐구한 제2권 '국가적인 차원에서 살펴본 문명화과정'이 이번에 번역돼 완역본이 국내에 선보인 것.
중세 서구인의 모델은 욕망을 마음대로 폭발시키거나 걸핏하면 칼을 꺼내는 무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면서 중세 기사형 인간이 모습을 감추게 되고 절제와 예의를 강조하는 세련된 문명인이 태어나게 된 것. 이런 변화는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볼 수 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서구인들은 아무데서나 방뇨를 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고 여인숙에서 모르는 남자들이 같은 침대에서 벌거벗고 잠을 자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 서구인들은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과연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책은 변화의 근원을 중앙집권적 국가의 출현에서 찾고 있다.
세련된 현대 서구인의 모습은 지방분권적인 중세에는 없었으나 폭력(권력)과 조세권을 독점한 절대왕정 국가가 태동하면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즉 문명화의 진행을 서구 중세사회와 근대사회의 구조적 차이를 통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사회의 지방분권화된 물리적인 폭력이 근대사회에서 국가형태로 재결합되면서 국가는 사람들을 길들이고, 평화롭게 하고, 문명화시킨다고 엘리아스는 해석한다.
그는 식사예법, 방뇨행위, 코를 풀고 침을 뱉는 행위, 잠자는 습관, 남녀간의 관계 등 일상의 세세한 행동유형을 장기적으로 고찰한 끝에 서구인의 일상의례가 12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점차 변화해왔음을 밝혀내고 있다.
유태계인 엘리아스는 정통 사회학계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다분히 이단적인 학자였다. 그의 주저가 30년대에 저술됐지만 정작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69년 그의 주저인 '궁정사회'가 처음 출간됐고 70년대 들어 '문명화과정'이 프랑스어로 번역·출간되자 학계는 물론 시사주간지나 일간지 심지어 술집 가수들의 샹송가사에 이르기까지 인용될 만큼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다. 한길사측은 엘리아스의 또 다른 대표작인 '궁정사회'를 내년쯤 번역출간할 계획이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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