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애비는 어머님이 해주는 반찬만 먹어요. 지난번 어머님이 해주신 졸임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그래 그래. 또 해오마"
30~40대쯤 됨직한 주부 몇명이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면서 자기네끼리 나누는 반찬 안하고 편하게 때를 해결하는 비법을 듣고 있던 50대 주부 박정자(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전 대구시여성유도회장)씨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님이 해주신 반찬을 애비가 너무 잘 먹어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시어머니가 그길로 달려가 허겁지겁 또다시 반찬을 장만해온다"며 키득거리는 모습에 "아무리 세태가 그렇다지만 화가 나더라"고 털어놓는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반찬 한두번 해주는게 흠이 될 리 없지만 시어머니를 속여서 제 잇속만 차리려는 며느리의 계산된 언행(?)이 박씨에게는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반대로 노인들끼리는 손자·손녀 안맡는 비법을 공유하는 풍속도마저 생겨나고 있다.
"두어번만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다가 손자에게 집어주어 위생적으로 불쾌감을 주고, '가시개' '핵교'식으로 사투리를 쓰면 똑똑한 며느리들이 질겁해요. 절대 손주 안맡겨요"
'시댁반찬 날라먹기'에 머리를 굴리는 며느리에 뒤질세라 시어머니들의 손자녀 안보기 세태는 한없이 헌신적이던 내리사랑의 빛깔마저 퇴색시키고 있다.
당연히 시부모가 봐주던 친손녀·친손자 가운데 계산적인 사랑, 편리함만을 좇는 풍조로 바뀌고 있음을 대변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자식은 내가 키운다던 부모세대가 손자녀를 맡기를 거부하면서 분가한 '직장 며느리'들은 부모님 대신 파출부를 따라 이사를 다니는 신종 풍속도마저 생겨나고 있다.
떨어져 살면서 서로 나누지 않은채 편리만 채우려는 이기심이 고부관계를 물고 물리는 관계로 변질시키는가하면 여전히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헌신적인 사랑을 이어가는 고부관계도 없지 않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허인전 약국장은 일하는 며느리(김성은씨·대신대교수)를 대신해서 손자의 유치원 귀가길에 맞춰 꼭꼭 귀가, 화목한 가정·화목한 고부관계의 모델케이스로 소문났었다.
김씨는 3세대가 함께 살면서 자주 시부모님께 편지를 드려 감사함과 정을 표현하여 고부간의 벽을 아예 쌓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98년 한해동안 함께하는 주부모임(053-425-7701)의 주부상담실에 접수된 주부상담은 총 437건. 이 가운데 9%를 고부갈등이 차지했다.
여성 핫라인인 '1366전화'(국번없이 1366)에 걸려온 고부갈등은 노년기에 대한 신체적·심리적 이해가 부족하거나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 며느리의 직무유기, 시부모의 손자부양 거부, 며느리에 대한 정신적 학대 등의 유형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정의 건강성 찾기'에 앞장서고 있는 대구 두란노서원(대표 박보경, 053-422-4494)에서 열린 고부화합세미나에서 가족관계학자 홍숙자씨는 "같이 살든, 떨어져살든 어머니세대를 이해하고 서로 축복하는 일이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재미의학자 김영준박사는 '사랑받는 세포는 암을 이긴다'는 저서의 말미에 이런 주장을 한다. "사랑할때는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신체에서 발산하여 사랑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전달, 고장난 유전자를 고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사랑을 전하는 놀라운 매개체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럼 서로 축복하는 방법은? 간단하게 응용할 수 있다. 생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지닌 시어머니가 헛말로 "어서 죽어야지"그럴때 "예" 하거나 "묵묵부답"은 축복이 아니다.
"아니에요, 어머니. 요즘은 의학이 발달돼서 얼마든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어요" 이런 축복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쌓여 고부관계를 놀랍게 변화시키는 기초를 놓고, 그럴때 위기의 가정의 회복될 수 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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