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대통령 대구.경북방문-만찬대화록(요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3일 대구를 방문, 박정희(朴正熙)대통령기념사업 추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방침을 밝혀 지난 92년 대선때 박 대통령 묘소를 참배함으로써 선언했던 박 대통령과의 '화해'를 재확인했다.

김대통령은 신현확(申鉉碻)전국무총리를 비롯해 박대통령 기념사업 준비관계자들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68년 청와대로 세배를 가서 박대통령을 만난 이래 71년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은 일 등 10.26까지 18년 간의 일화를 소개하고, 박대통령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등 범국민적인 기념사업을 국민화합의 계기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대통령은 박대통령의 가장 큰 공로로 국민적 자신감을 불러 일으킨 점을 꼽고 근대화를 이룬 것에 대해서도 긍정평가했다.

이날 김대통령은 "이번 일이 국민의 마음 속에 지도자를 아끼고 좋은 점을 배워 후손에게 넘겨주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해 박대통령 기념사업에 대한 지원방침이 박대통령과의 화해를 넘어 새로운 전통 확립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뜻도 피력했다.

한편 약 1시간 반에 걸쳐 갈비탕과 포도주가 어우러진 이날 만찬의 분위기와 관련, 한 참석자는 웃음과 감동의 연속이었고 김대통령의 말도 진심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신전총리는 김대통령의 말에 '위대한 결정''역사의 위대한 업적'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김재학 박대통령생가보존회장은 "박대통령 밑에서 부귀영화와 혜택을 받은 자들은 기념관의 '기'자도 꺼내지 않는데 가장 박해를 받은 김대통령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말했다.

다음은 만찬 대화 요지.

▲이의근경북지사=근대화의 상징인 박대통령과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통령 간 만남과 조화는 역사적 흐름이고 영남과 호남의 만남이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철학에도 부응하는 일이다. 민주화의 역정에서 생사의 고난을 거친 김대통령이 박대통령을 평가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국민 대통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대통령=나는 박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비판했으나, 맹세코 미워하지는 않았다. 71년 대선 후 18년간 우리는 여야 입장에서 한국정치의 양 축을 이뤄 왔었다. 지난 68년 청와대 세배 초청을 받았을 때 야당이 불참했는데도 갔더니 박대통령은 나를 한쪽으로 끌고가 4, 5분간 얘기를 나눴다. 육영수(陸英修)여사는 친정식구처럼 반가위 하며 "왜 부인과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국민들이 육여사를 흠모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79년 감옥에서 나와 연금상태에 있을 때 만나려 했다. 이승만(李承晩), 윤보선(尹潽善) 전대통령 등 모두 불행했다. 박대통령까지 불행해지면 나라가 불행해진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고 몇 달 뒤 돌아가셨다.

나는 민주주의를 우선해야 한다고 했고, 박대통령은 경제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보니 둘 다 병행했어야 옳다. 박대통령이 6.25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전직 대통령이 잘한 일을 평가하고, 돌아가신 분이 역사 속에서 재평가받게 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사이에 사람을 아끼는, 지도자의 좋은 점을 따르는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 박대통령도 지하에서 흡족해 할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도 가능한 지원, 유종의 미를 거둬 우리 역사에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남기 바란다.

▲신현확 전총리=감명깊은 말씀에 감사한다. 외환위기 때 누구도 앞장서 몸던질 사람이 없었으나 김대통령은 당선자로서 앞장서 수습을 시작, 1년반 만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나는 박대통령 밑에서 근대화와 경제개발을 위해 일한 사람으로서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축배 선창으로 그 심정을 대신하겠다.

▲김대통령=사형선고를 받고, 수없이 감옥생활을 했던 시절의 다른 전직 대통령도 용서했다. 모두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참석 기업인들에게)기부 좀 많이 하시라. 오늘 저녁은 비싼 식사다. (웃음)

대선 당시 구미에 갔을 때 솔직히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표를 의식했었다. 표는 안나왔으나 그렇다고 좋은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또 지금 나는 대통령이 돼 표를 달라고 할 이유가 없다.

▲김기재행자부장관=추진위를 범국민적으로 구성하고 기부금 모금 허용 등 모든 행정조치를 대통령 뜻에 따라 하겠다.

▲김대통령=형식은 민간주도로 하고 정부는 기부금 모금 등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면 기업인들도 걱정없이 기부금을 내고 국민적 호응이 있을 것이다. 오늘 합의된 일을 뜻깊게 생각한다.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도 협력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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