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다방. 유행가 가사처럼 낭만적인 곳만은 아니다. 동의어가 되다시피한'티켓다방'이라고 불러 세우면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올려내지 않을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우리에게 농·어촌이 현실로 존재하듯 시골 다방도 이들을 떠받치고 있는 엄연한 문화의 하나로 존재하고 있었다.
참외꽃 짙은 향내를 따라 찾은 성주. 지천으로 널린 비닐하우스에서 한창 쏟아져 나오는 참외는 그 노란 색깔마냥 이곳에선 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주민 350명당 1개꼴. 성인 남자만 꼽으면 100명당 1개도 넘는다. 도내 시·군중 인구수에 비해 가장 많은 다방을 갖고 있는 성주군 다방마다 여종업원 수를 늘리는 것도 이즈음."지금부터 8월까지가 좀 장사가 낫게 됩니더. 요즘은 하루 한 30만원 가차이 손에 쥐지예"
선남면 한 다방 여주인 이모(50)씨는 차 한잔을 같이 하자고 하자 내처 앉더니 쉬 영업 기밀을 흘린다. 말처럼 20대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세명의 여종업원이 들락 날락 바쁘게 차배달에 나서고 있어 단대목임을 느끼게 했다. "어데가노" "대낮에 여관에서 오라 안카나"
종업원은 한 50대 홀 손님의 무료함을 배려하듯, 콧소리 섞인 진한 농담으로 한바탕 분위기를 잡아 놓고는 또다시 휑하니 배달에 나선다.
낮시간대 차배달은 주로 노래방,식당 등지로 나가고 가끔 비닐하우스에서도 시킨다는 것이 주인 이씨의 설명.
소위 말하는 티켓은 시간당 1만5천원. 읍은 그래도 대처랍시고 2만원을 줘야 한다.
인근에 최근 개업한 조그마한 한 술집앞엔 늘어선 7, 8개의 화환중 주변 다방에서 보낸 것이 3개를 차지, 손님 쟁탈전도 예사롭잖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히 서비스 경쟁도 부채질하고 있을 터.
이에 따른 폐해는 없을까.
"많지예. 요즘 참외팔아 현금을 만지기 때문에 다방에서 티켓을 끊고 아가씨와 함께 어데 놀러다니다가 빈털털이로 돌아 와 시끄러운 집도 많다 카데예"
초전면 대장리 한 비닐하우스에서 남편과 함께 서울 가락동 시장에 내다 팔 참외를 등급별로 골라 상자에 담고 있던 박성임(52)씨의 설명이었다. 취재진을 맞은 이들 부부도 인근 다방에다 핸드폰으로 차배달을 주문했다.
하지만 박씨의 말은 '카더라'통신 수준을 벗어나진 못했다. 주위에서 직접 본 적은 없다는 것.
저녁, 노래방에서 만난 성주읍 한 다방의 여종업원 정모(31)양은 "요즘 경찰서에다 티켓다방으로 속 끓이는 주부들이 민원을 넣어 영업에 지장이 적지 않다"고 좀 더 혐의 짙은 말을 내뱉었다.
성주경찰서에다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티켓다방 관련,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입건 사례는 11건. 그러나 대부분은 선금을 건네 받은 여종업원이 중도 줄행랑 친 것 등 다방 내부 사정과 연관된 것들이었다. 큰 사건이래야 선금을 받은 여종업원이 나가려하자 선금 돌려주고 가라는 주인에 맞서 윤락행위를 시켰다고 여종업원이 고발, 업주가 쇠고랑 찬 일 정도.
경찰 측은 또"민원은 아직 한 건도 들어온 것이 없으며 다만 이맘때면 그같은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단속을 강화중"이라고 전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티켓다방에 얽힌'어둠의 얘기'들은 아무래도 현실보단 앞서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마을에서 하나의 '소문 난' 사건이 일어나면 발생지역과 시기는 별도로 한 채 어젯일처럼 쑥덕거리다 하나의 정설이 돼버리듯.물론 티켓다방의 점잖지 못한 밤 영업행태가 다분히 어두운 상상을 지피게끔 하는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티켓을 끊거나 주인에게 통상 5만원의 외박비를 내놓고 나면 단란주점이든 여관이든 여종업원이 크게 개의치 않고 출입한다는 점에서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사실 취재진은 찻잔을 들고 여관을 드나드는 여종업원을 여러번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용객들이 진짜 동네 사람들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마을 관계자들의 얘기였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우예 시간당 2만원씩 하는 티켓을 끊어갖고 놀러 다닐 수 있겠능교. 그만한 돈도 시간도 다 없어예. 우짜다가 밥먹고 재미삼아 아가씨 불러 타(차)한잔 먹고 그보다 더 크게 마음 묵으면 스트레스 푼다고 노래방 가서 아가씨들 불러 한번 바람쉬고 하는 정도지예"
의성읍 한 공무원은 이처럼 전하며 농도짙은 행태는 외지인들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미 이같은 다방 문화에 젖어 살다시피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안 그래도 놀이 문화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농촌에 그나마 다방아가씨라도 있어야 되지예. 안 그라마 여기 농촌 총각들은 언제 여자 구경해 봅니꺼. 좀 젊은 여자라고 있다카마 다 다방 아가씨 아잉교"
군위읍내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난 김모(47)씨는 티켓다방의 존재 가치를 소박하면서도 날카롭게 짚어버렸다. 적폐가 따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아, 지난번에 증시 문제로 뭐라카니까 정부 책임자되는 양반이 거품이 아니라면서도 어쨌든 투자에 대한 책임은 각자가 지는 것이라고 하데예. 그 말처럼 다방도 어른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다 자기가 한 일에 자기가 책임지는 것 아입니꺼"
같이 자리하고 있던 55세의 한 주부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봐예"라고 맞장구 쳤다.
이미 시골에선 시름의 찰라적 분출장이자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잡은 티켓다방. 시골 삶에 천착하지 않은 채 티켓 다방을 도회지적 감응으로 타박하거나 염려하기에는 오히려 현지인들의 코웃음 살 일이 되고 있었다.
〈글·裵洪珞기자, 사진·鄭在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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