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무국 이해대변 국제모임 대구라운드(1)

자본 자유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경제 세계화가 중·후진국들의 목을 죄고 있다.

'경제 세계화(Globalization)'는 지난 96년 프랑스에서 열린 리용 서미트(선진국 정상회담)에서 처음 국제적 공문서 용어로 쓰였다. 세계화는 본질적으로 '폭력성'을 띤다. 각국의 고유한 기준과 규칙을 인정하며 교류 확대를 추구하는 국제화와 달리 세계화는 공통된 기준과 규칙을 강요한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때문에 각국은 자의든 타의든 세계화 조류에 휩쓸려 가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화가 지닌 폭력성이 투기자본에 그대로 옮겨진다는 점이다.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자본은 세계화를 통해 구축된 국제금융시장을 무대로 활동한다. 투기자본들은 주식이나 통화가치 상승 가능성이 있는 국가나 지역에 몰려가 시세차익을 챙긴다. 개별국가들의 1일 자금동원능력이 수십억달러에 불과한데 반해 이들 투기자본이 동원하는 금액은 1천억달러를 웃돈다. 투기자본이 한번 눈독을 들인 국가는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헤지펀드에 무참히 깨졌고 유럽 고정환율제가 붕괴됐으며 최근 잇따른 러시아, 브라질, 동남아 금융위기 또한 단기성 투기자본에 의해 비롯됐다. 일단 금융시장이 흔들린 국가는 국내 경제를 해외 투기세력의 구미에 맞도록 변화시킨다. 국가의 경제 간섭을 축소하고 시장논리를 도입하면 부와 일자리가 증가한다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주식가치 상승을 유도하는 한편 국가 지출을 최대한 줄인다.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 뒤에 남는 것은 고실업, 저임금체제와 빈익빈 부익부의 고착화이다. 성공적인 경제개혁을 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조차 지난해 국민평균소득의 50%에 못미치는 빈곤층이 1천200만명에 이른다. 지난 20년간 상위소득층 20%의 소득증가율은 200%인데 반해 하위소득층 20%의 증가율은 15%에 그쳤다. IMF 구제금융 이후 세계화에 눈높이를 맞춘 중·후진국들 중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투기자본 규제에 대한 국제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콩 선물거래소는 국제투기자본의 주식 선물거래를 제한했으며, 대만은 조지 소로스 펀드 불법거래에 대한 단속령을 내렸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전제주의적 자본주의'라며 미국의 투기자본을 비난하고 있다. 헬무트 슈미트 독일 전총리는 투기자본을 현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IMF의 채무해결사 역할 포기를 주장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해 연례보고서를 통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은 국제투기자본에 맞서 일시적 채무불이행과 자본출입 규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채권국을 대변하는 IMF를 대신해 채권국과 채무국의 이해를 균형있게 반영하는 새로운 국제채무조정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구라운드가 추진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개별국가가 세계화 조류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국제 연대를 통해 올바른 세계화의 주류를 형성해 보자는 구상이다. 대구라운드는 국제적 양심세력의 연대임을 자임하며 중후진국 경제위기 돌파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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