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이 아침,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달프고도 피곤한 우리의 시민들은 열세번째로 맞는 그날 항쟁의 정치사적 의미를 되새기기에 앞서 놀란 가슴부터 먼저 쓸어 내린다.
코가 깨져도 그만하기 다행이란 심정으로 대통령이 검찰 파업유도 의혹에 국정조사권 발동을 수용했다는 소식때문이다.
6·10항쟁의 의미가 김대중 정부에서도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획을 그은 대사건으로 자리매김된다는 사실 자체가 퍽이나 역설적이긴 하지만.
김대중 당시 민추협(民推協·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은 87년 6월25일 새벽, 78일동안의 연금이 해제되면서 동교동 자택을 가득 메운 백수십명의 기자들 앞에서 "국민의 소리인 자유와 정의와 통일에의 대로가 새로운 민주정부 아래서 튼튼히 열릴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고 감격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국민들의 민주화 역량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6·10 항쟁을 통해 이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미리 준비했던 성명문안을 차분히 낭독했다.
다시 12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시민들은 말한다. '국민 없는 국민의 정부'로부터 민심이 떠나가고 있다고-.
이 시민이란 자그만치 113개의 시민·사회·노동단체를 가리킨다. 이들중 적지 않은 숫자는 그날, 서울시청앞 광장을 입추의 여지도 없이 메웠던 역사의 현장에 있었음직도 하다. 법무장관 임명부터 해임후까지 하루도 영일이 없다. 옛날 표현으로 재야인사 610명이 9일, 개혁촉구 선언을 했다.
시민단체들은 "눈과 귀를 막고 있는 대통령과 보좌진의 오만·독선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실로 착잡한 세상 유전(流轉)이 아닐 수 없다.
DJ는 항상 독특한 수사법을 즐겨 써 왔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때는 '내 한없이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인 그다.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선굵고 쉰목소리로 호소할땐 상대적 비판자들의 마음 한구석까지 조용히 일렁이게 했다. 그러나 지난 일을 자꾸 되짚어 무엇하랴.
국민의 정부는 지금도 그들의 오만과 독선이 위험수위에 닿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그것부터 묻고싶다. 대통령면담을 앞두고 청와대비서진이 대통령에게 말할 요지를 방문자에게 미리 요구하는 비서진들이 포진해있는 한 정의는 강물은 커녕 산속의 석간수(石間水) 만큼도 흐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정권이 경제개발을 이유로 민주주의를 유보한 것처럼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국민들의 얘기를 여론몰이로 몰아 붙이지는 않았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대통령의 해박한 지식과 가부장적 권위로 아랫사람의 직언이 어려운 분위기라면 동맥경화의 초기증세로, 상하 모두의 연대책임이다.
대다수의 건강한 시민들은 지금의 시점에서 대통령의 항심(恒心)을 떠올린다. 항상 품고있어 변하지 않는 떳떳한 마음, 그것은 바로 도덕심을 가리키는 것일게다.
그것밖에 이 정권이 내놓을만한 게 무엇인가. 6·3 재선거에서 인천계양·강화갑의 패배는 90년대 들어서는 처음 맛본 소중한 한 움큼의 소금과 다를 바 없다. 광주의 유권자는 80%이상이 현역의원들의 물갈이를 바란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있다. 과연 이대로 좋은가.
'종가(宗家)가 망해도 향로·향합은 남는다'고 했다. 이 정권이 다시 3년반이 지나면 들고 나갈 것은 도덕심뿐이란 사실의 인식은 대단히 중요하다. 돈선거를 폭로한 가난한 신문사를 상대로 무려 101억원의 배상을 청구한 집권당은 정말 돈이 탐나서인가. 아니면 언론겁주기인가. 이 시점에서 김대중정부의 종합신체검사를 권한다.
심전도검사에서부터 혈중 지방농도도 체크해봐야 할 시점이다. 집권후부터 지방이 갑자기 늘어난 건 아닌지 알아봐야 협심증에서 시작되는 심장관련 중증질환의 예방이 가능하다.
이밖에도 체형검사, ×-레이 등등. 조직의 아퀴가 맞아 떨어지는 유기체가 돼야 건강을 담보한다. 진형구(秦炯九)발언 파문의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은 무엇인지, 중·하 위직공무원들이 장관 안사람들의 옷난리에 대한 시각은 무엇인지, 집권당엔 식물당직자들로만 채워져 있는건 아닌지 총체적인 조직점검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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