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빨리빨리 병

급박하게 순간을 살면서 눈 앞의 화려한 환상만 붙잡으려 하는 것이 현대인의 심리가 아닐까. 손가락사이로 무수히 빠져나간 세월을 한 순간에 몽땅 보상이라도 받고자 하는, 그래서 노한 거위처럼 기성을 지르면서 불꽃속으로 날아들어가는 불나방처럼, 빨리 빨리 뭔가를 잡고자 하는 그런 괴팍한 심리말이다.

아파트가 그렇고 교량도 그렇다. 번개불에 콩볶아 먹듯 빨리 빨리 지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고속도로에 차만 올려 놓으면 총알처럼 신나게 달려야만 마음이 후련해지고…

이래서 급기야는 멀쩡해 보이는 아파트나 백화점이 무너지고 교량이 내려 앉는다. 다른 나라에 뺏길세라 교통사고 세계 랭킹 1위도 단연코 우리나라 차지다. 빨리 빨리 짓고, 빨리 빨리 사고 팔고, 빨리 빨리 어디론가 달아나기를 좋아하는 빨리 빨리 병폐 때문에 공무원의 기강이 무너지고, 인륜과 도덕이 무너지고, 그래서 놀란 국민들의 가슴도 사상누각처럼 와장창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슬픈 실상이 아닌가. 이 모두가 빨리 빨리 병이 빚어낸 서글픈 유탄들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 달도 못채우고 떠난 몇몇 장관들의 임명, 해임 등의 사건만 해도 앞뒤를 완벽하게 재보지 않고 빨리 빨리 처리해 버린 병폐의 본보기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지금 하루종일 보고, 말하고, 접하는 것이 부정과 불의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을만큼 부정속에서 숨쉬고 있고, 또한 부정을 숨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독특한 병리현상의 하나로 패배주의를 들 수 있다. 좌절하면 자폭하고 자학하는 모습따위 말이다. 기관차를 몰고 살얼음판을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은 빨리 빨리 병의 무서운 병폐, 이제야말로 정말 바로잡을 때다.

땅속의 알로부터 시작하여 애벌레로 탈바꿈한 후 꼬박 7년동안을 지옥같은 땅속에서 살다가 허물을 벗고 세상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 생애는 불과 7일뿐. 7년간의 기다림이 고작 7일간의 생애에 불과하다니 기막힌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매미는 내일의 운명도 모르고 신나게 여름을 노래한다.

빨리 빨리 병에 걸린 환자들이여, 모름지기 매미의 인내심을 본 받을 지어다.

〈동서병원·한방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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