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벤처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지역에서 벤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1년 남짓. 지난 6월 대구.경북지방 중소기업청은 지역내 벤처기업이 200개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대학 창업보육센터내 입주업체들을 포함할 경우 지역 벤처기업수는 300개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놀라운 양적 팽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적인 증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역 벤처의 짧은 역사가 이뤄낸 가장 큰 소득은 벤처 성장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 공감대 형성이다. 대구시가 자동차 벨트 조성, 밀라노 프로젝트 등 굵직한 경제정책을 내놓았지만 시민들은 '과연 대구의 장래를 책임질 산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런 중에 벤처산업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대구테크노파크 이종현 단장은 "지난 1년간 벤처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 전환은 가히 획기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벤처가 뭐냐', '지역에서 벤처가 가능하냐'는 질문이 '어떻게 육성할 것이냐', '스타벤처는 가능한가'와 같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러나 벤처기업의 양적인 확장과 지역민의 인식 변화에 비해 지역 벤처의 현실은 너무 미미하다. 기술개발의 한계, 인력 부족, 자금 확보의 곤란, 입주공간의 절대 부족, 전략적인 벤처육성정책의 부재가 낳은 결과다.

벤처기업인은 물론 보육기관 관계자들도 '이대로는 안된다'는데 공감한다. 대구.경북만을 놓고 볼 때 쾌속성장을 이뤄온 것이 사실이지만 한걸음 앞서 출발한 서울, 대전 등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출신의 한 벤처업체 사장은 "지역에 벤처기반을 잡았지만 솔직히 서울이나 최소한 대전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고 말한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기술 협력을 할 동종 업체가 없는데다 성공리에 제품을 만들어도 마케팅할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당초 황무지나 다름없는 지역에 벤처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U-턴 효과 극대화'가 있었다. 지역에 우수한 벤처보육환경을 조성해 지역 출신 벤처인들을 귀향토록 하자는 취지였다. 한동안 러시를 이루던 귀향물결은 잠잠해진지 오래다. 오히려 지역에서 창업한 벤처기업들이 서서히 역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역업체들을 소화하기에도 부족한 보육환경으로 외지 벤처를 끌어들인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였다.

또 장기적 정책을 수립해야 할 지자체와 벤처육성의 구심점이 되는 테크노파크, 돈줄을 쥐고 있는 투자기관들이 끊임없는 불협화음을 내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문민정부시절 시작된 테크노파크 사업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산업자원부는 올해 사업단별 지원액 50억원 중 25억원만 내려보낸 채 각 지자체에 테크노파크를 떠맡으라고 종용하고 있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지자체로선 엄두도 못낼 일이다. 결국 테크노파크 사업은 출범 2년에 접어들어 공중분해될 처지에 놓여 있다.벤처기업 창업후 1~2년은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기업이 가장 많기 때문. 지역 벤처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몰락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지방정부, 대학, 보육기관, 투자기관들이 지금이라도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벤처 육성이 21세기 지역 경제를 책임질 대안이기 때문이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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