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자가 바라본 새백년 새천년-(6)밀레니엄 패션

저물어 가는 20세기 최고의 꾸띄리에(옷 짓는 사람)는 단연코 프랑스가 낳은 전설적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을 꼽을 수 있다. 코코 샤넬이란 애칭의 그녀는 카리스마적 미인에 놀랄만한 창의력과 장인정신의 소유자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꼭 죄는 코르셋에 묶여 있던 여성의 몸을 옷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켰다. 무릎을 살짝 덮는 샤넬라인 스커트는 질질 끄는 드레스에 감춰져 있던 여성들의 다리를 드러내게 했고, 얌전한 여성미가 강조됐던 그 시대에 과감하게 남성적인 요소들을 도입, 오히려 더욱 사랑스럽고 편안하고 넉넉하며 실용적인 옷들을 만들어 냈다. 죠지 버나드 쇼가 샤넬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명의 여성 중 한명'(다른 한명은 노벨상 수상 화학자 마리 퀴리)으로 언급할 정도였다.

샤넬이 여성들로 하여금 코르셋을 벗어 던지게한 것이 불과 50여년전. 그 이후 2천년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패션은 엄청난 속도로 변천해 왔다. 스커트 길이는 짧아졌다 길어졌다, 깃은 넓어졌다 좁아졌다, 바지통도 헐렁해졌다 꽉 죄였다… 마치 그 자체에 생명력을 가진 생물체처럼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돼 왔다.

그렇다면 21세기 패션의 화두는 무엇일까. 정보의 수퍼 하이웨이가 전세계를 달리는 글로벌시대의 패션 기호는 무엇일까.

어쩌면 지금 세계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신비의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그들만의 수정구슬에 주문을 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제발 21세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패션을 보여달라'고.

사실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운 패션의 특성상 수십 수백년 후의 패션을 미리 앞당겨 본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21세기 사회를 유추해 봄으로써 시대와 사회의 거울 역할을 하는 패션의 흐름도 어느 정도는 조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컴퓨터가 인간의 생활 곳곳에 녹아들 것으로 보이는 21세기의 핵심적인 패션 소비집단은 이른바 N(net)세대, 즉 컴퓨터와 PC게임에 익숙한 사이버 세대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사이버 스페이스를 자유롭게 떠다니며 항해하는 여행자며 방랑자들. 아침부터 밤까지 컴퓨터와 대화하고 컴퓨터와 웃고 우는 N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야 말로 미래의 패션전문가들이 가장 중요시 해야할 컨셉일 것이다.

금세기까지만 해도 유명 디자이너들의 값비싼 옷, 세계적인 특정 브랜드의 옷들은 바로 입은 사람의 사회적 지위, 부, 명예를 드러내 주는 부호였다.

그러나 사람보다 컴퓨터와 더 친한 N세대들은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브랜드에는 관심없다. 어떤 옷이든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을뿐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 그래서 앞으로 미래사회에 펼쳐질 패션 트렌드는'마음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가 주류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장 폴 고티에 같은 디자이너들이 즐겨 만들어 내고 있지만 동양과 서양, 남과 여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드, 신비하면서도 직설적이고, 중성적이며, 목가적인 서정과 퇴폐의 내음이 병존하는,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모호한 흐름들이 마구 뒤섞여 나타날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더이상 디자이너들이 유도하는 대로 따라다니지 않게 되며, 자연히 유행따라 우르르 닮은 꼴이 쏟아지는 떼거리 풍조도 사라질 전망이다. 디자이너 박동준씨는 "21세기의 패션소비자들은 유행에 휩쓸리는 것을 거부하고, 남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할 것이며, 특히 실용적인 패션에 관심이 클 것 "으로 내다봤다.

일과 휴식의 철저한 구분, 하이테크사회에 따른 대중 속의 고독감 등으로 21세기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레저생활에 몰두할 전망이다. 때문에 정장보다는 몸을 구속하지 않는 활동적이고 간편한 캐주얼이나 스포츠웨어가 다음 세기 패션의 메가 트렌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 장소·경우에 따라 옷을 구별해 입는 20세기식 T·P·O(Time·Place·Occasion)의 에티켓도 어쩌면 21세기엔 구닥다리 옛이야기가 돼버릴지 모른다.

사람들은 야외파티에 가거나 혹은 교회에 가거나 상관없이 동일하게 입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방에 드러누웠을때 처럼 편안한 기분을 옷에서도 느끼려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패션의 두드러진 흐름의 하나로 예상되는 것은 소재가 디자인을 능가할 것이라는 점. '이제 더 이상 나올 디자인은 없다'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말대로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 디자인은 더이상 나오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 반면 소재는 얼마든지 개발의 여지가 큰 분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미 기능성 신소재들은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웨어에 실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때 유럽이나 미국선수들이 착용한 스키복은 유난히 얇고 가벼운 것이었다. 미국 듀폰사가 개발한 사람 머리카락의 250분의 1 굵기인 극세사 폴리아미드로 짠 리크레아섬유로 만든 것. 방한방수 기능에 햇빛을 받으면 섬유 자체가 발열하는 이 첨단섬유는 하지만 앞으로 2005년께엔 폴리아미드 보다 몇배 더 가느다란 초극세사에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내에서도 코오롱이 머리카락의 2만분의 1에 불과한 초극세사를 비롯 10g으로 서울~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초극세사를 개발하는 등 전세계가 첨단 소재 개발에 사운을 걸고 있다.

2천년대를 지배할 대표적 가치관으로 미래학자들이 추정하는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인체의 건강과 패션감각을 극대화하는 첨단 소재들은 갈수록 더욱 각광을 받게 된다. 실을 만들때 아예 향기나는 물질을 넣어 짠 방향성 섬유, 반대로 몸의 냄새를 없애는 탈취성 섬유, 더러움을 방지하며 세탁후에도 기능이 지속되는 방오성 섬유, 입으면 시원한 에어컨 섬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섬유, 질병치료에 효과가 있는 섬유, 햇빛과 습도·온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카멜레온 섬유 등 상상을 뛰어넘는 신소재들이 잇따를 전망이다.

첨단과학과 패션의 접목에 대한 기대감, 그로인한 상상력은 21세기 패션을 한결 재미롭게 한다. 어떤 이는'디자이너들이 스프레이 캔을 만들어 단지 옷에 뿌릴때마다 새로운 소재로 변하기도 하고, 주머니에서 달걀을 프라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꿈꾸기도 한다. 동화속에서나 존재하던 '보이지 않는 옷', 또는 신기루같은'투과성 옷'도 그저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全敬玉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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