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화장실 문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이해하려고 하면 그 나라의 공중 화장실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1997년 방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불편사항을 조사한 것에 의하면 교통혼잡, 언어소통에 이어 세 번째가 화장실의 불결함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과거 재래식 화장실을 본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둠으로써 불결함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화장실의 다른 명칭으로는 측간·뒷간·통시 등이 있는데 '근심을 푸는 장소'라는 뜻인 해우소(解憂所)라는 멋진 말도 있다.

잠시 육신의 근심을 해결함으로써 마음에서 생긴 근심 역시 털어 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때 시인에게는 아름다운 시상이, 발명가에게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뇌리를 스치기도 할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의 역, 도로, 휴게실 등에 있는 공중 화장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청결해졌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많이 낙후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아마도 화장실 관리자는 물론이고 사용자의 청결의식 부재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내가 과거 호주의 한 공립병원에 근무할 때를 기억해보면, 그 병원의 화장실은 넓고 밝았으며 항상 향수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오물이나 변이 변기에 묻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미화원이 하루종일 청소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신체구조가 우리와 전혀 다른 것도 아닐 터인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깨끗한지 궁금하였다.

더구나 내가 근무하던 곳은 대장 내시경검사를 위해 환자들이 설사약을 먹고 대변을 보던 곳인데도 말이다. 관찰을 시작한 지 수개월 뒤 그 답을 알게 되었다.

현지인 한 사람이 변기를 사용한 후 그 변기 내부를 휴지로 닦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또한 미국여행 중에도 여관의 공중 세면대를 사용한 후 수건으로 닦고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기껏해야 비행기를 타게 되면 화장실 세면대에 '다음 분을 위해 사용 후 휴지로 닦아주세요'라는 문구를 통해 간접 교육을 받는 정도이다. 문득 군의관 훈련 때의 중대장님이 생각난다. 당시 청소검열시 화장실만 중점적으로 점검했는데 변기에 묻은 오물을 손 걸레로 깨끗이 닦도록 지시했다. 화장실이 청결하면 다른 곳은 볼 필요도 없다는 뜻이어서일 것이다.

이제 화장실은 더 이상 구석진 곳에 방치하여 생리적인 욕구만 충족시키는 공간이 아니다. 깨끗이 사용하고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성숙한 선진 시민의식을 나타내는 척도일 것이다.

곽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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