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고목과 도깨비

처서(處署)날 비가오면 독안의 곡식도 준다는 속설이 있다. 오늘이 처서. 비오는 지방이 많아 은근히 걱정이다. 그 처서를 하루 앞두고 청와대는 오는 25일 맞게 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취임 1년반을 정리하는 자료를 냈다. 사흘 당겨 미리 낸 셈이다. 이 자료를 보고 반응도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일 것이다. 어떤 이는 이제 겨우 1년반 밖에 지나지 않았느냐고 지겨워 할테지만 벌써 1년반이 지나갔느냐며 화살같은 세월의 빠름을 아쉬워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취임 100일이니 1년이니 하는 말들이 오고간게 어저께 같은데 다시 1년반을 정리하고 나선 이 자료의 큰 줄기는 우선 IMF 1년반만에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자평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자평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금리, 물가, 환율, 주가 등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기과열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니 이 점은 일단 긍정적이라고 하자. 이 자료는 이어 사회안전망 확충을 비롯 대북정책과 4강외교, 국가보안법 개정, 노조의 정치활동 및 교원노조 허용, 반부패특위 구성 등 소위 '김대중식 민주와 정의'를 국정운영의 중심과제로 지속적인 실천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재벌개혁 마무리도 물론 그 범주에 들어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의지에도 비판론자들은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해 오고 있다. 사실 그래야만 형평의 논리에서도 균형이 이뤄질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것이 맞고 틀렸는가는 그야말로 역사가 심판할 일들이다. 그렇지만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기 이전에 너무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지금 불거지고 있으니 청와대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올들어서만 TV나 기자간담회 등을 통한 대통령의 사과가 무릇 네차례나 됐는데도 공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은 그야말로 푸념이랄 수밖에 없는 일이지 않은가. 반세기만의 정권교체여서 그런지 부침 또한 엄청난 파고를 몰고온 1년반이었다. 사정, 세풍, 총풍에다 현 정권의 도덕성이 도마위에 오른 옷로비, 파업유도, 경기은행 로비, 고관집 도둑사건에다 최근의 JP오리발 등이 어우러져 앞으로 남은 3년반도 결코 마음 놓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고 했다. 국민이 도깨비인가 정부가 도깨비인가, 아니면 고목이 과연 국민인가 아니면 정부인가. 정말 알쏭달쏭한 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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