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 여인의 기막힌 세월

결혼 및 사망에 따른 호적정리를 제대로 하지않아 3명의 할머니가 이름이 뒤바뀐채 수십년을 살아온 기구한 사연이 밝혀졌다.

전모(75·여·대구시 수성구 욱수동)씨는 지난 47년 전남편과 헤어진 뒤 당시 홀아비로 지내던 박모(83)씨와 재혼했으나 전남편으로부터 도민증(당시의 주민등록증)을 돌려받지 못해 호적을 옮기지 못했다. 전씨는 도민증을 가지고있지 않으면 호적정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전씨는 지난 75년 남편 박씨의 전처 최모(64년 사망)씨의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 최근까지 최씨의 신분으로 살수밖에 없었다.

전씨의 전남편과 재혼한 또 다른 최모(94년 사망)씨도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그녀 역시 호적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전씨의 이름으로 주민등록 신고를 했다. 6·25전쟁 전후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와 정비되지 못한 호적제도 때문에 두 여인은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한 여인은 사망한 뒤에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

그러던 중 전씨는 남은 여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의 호적에 오르려면 전처 최씨의 사망 사실이 확인돼야 했기 때문에 지난 4월 최씨의 사망신고서를 행정기관에 냈다.

그러나 70대 할머니가 '자신'(사실은 최씨)의 사망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엉뚱하게도 경찰에 의해 범죄로 오인되는 해프닝을 빚었다. 대구 남부경찰서는 전씨가 고정간첩이거나 보험사기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결국 진상을 파악, 전씨를 돕게됐다.

이같은 경찰과 동사무소(대구시 남구 대명11동)의 도움으로 전씨는 결국 자신과 다른 두사람의 신분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전씨가 자기 명의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별세한 두 최씨도 자신의 이름으로 제사를 받을 수 있게되는 것으로 30여년 간에 걸친 희비극은 막을 내렸다.

대구 남부경찰서 김상기 경사는 "전씨가 허위 사망신고를 한 것은 법률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 것으로 드러나 선처할 방침"이라며 "그러나 수사 결과 세 사람에게 뒤늦게나마 호적을 되찾아줬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고 말했다.

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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