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벤처신화 만들자(4)-해외벤처, 이렇게 육성한다

치솟는 물가, 넘치는 실업자 - 미국 경제를 회생시킨 주역은 벤처기업이었다. 거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 무차별 감원을 단행, 고등 실업자를 양산할 때 이를 소화해 낸 것이 벤처 군단이다. 80~89년 미국내 500대 기업이 내보낸 인력은 400만명. 같은 기간 벤처나 중소기업이 창출한 신규고용은 1천600만명으로 방출인력을 모두 흡수하고도 일부 직종은 구인난을 겪을 정도였다. 디지털 경제를 창조해 낸 마이크로소프트사 등 굴지의 기업들이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

벤처의 잠재력에 놀란 세계 각국은 앞다퉈 벤처 활성화를 부르짖고 나섰다. 사이언스파크, 테크노파크, 리서치파크 등 벤처보육기관들도 잇따라 들어섰다. 당초 산업단지내에 위치해 입주 기업들의 연구개발을 전담하던 이들 기관은 80년대 이후 보육기능이 추가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띠게 됐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벤처육성 모델이 있지만 일본 모델이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하다.

미국, 유럽이 대학 중심의 자생적 테크노파크를 위주로 하는데 비해 일본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행정 주도형이다. 도쿄 인근 가와사키시에 위치한 '가나가와 사이언스파크(KSP)' 역시 지자체에 의해 조성된 연구 및 보육기관이다.

연면적 4만5천평의 거대 규모를 자랑하는 KSP는 3개 빌딩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개발형 기업들과 실험실이 위치한 '이노베이션센터 동관'과 상설전시장, 연구실 및 은행, 호텔, 상점 등 부대시설이 입주한 '이노베이션센터 서관', 그리고 대기업 공동기술개발실 및 KSP 출신 대형 벤처들이 있는 'R&D 비즈니스파크' 등이다.타케시 시모 KSP 전무는 "걸음마 단계 벤처부터 연매출 수백억원을 올리는 중견급 벤처에 이르기까지 일관 보육체제를 갖추고 있다"며 "보육단계별 전문 매니저들이 입주업체의 경영, 기술개발, 마케팅 등에 대한 자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89년 문을 연 KSP에는 현재 연구개발형 기업 97개를 비롯, 120개사가 입주해 있다. 전체 인원 4천200명 중 80%가 연구 및 기술인력이다. 인큐베이터룸에서 보육단계를 거치고 있는 58개 기업의 종업원은 450명이며, 이들 기업의 연매출액은 1천억원 정도. 그간 배출한 하이테크 벤처기업만 115개에 이르는 등 명실상부한 지역 벤처의 산실이다.

일본의 실리콘밸리로 급부상하는 교토 역시 '리서치 파크'를 통해 벤처기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인구 140만명의 일본 6대 도시인 교토는 세라믹, 공예,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공업중심지였다. 공업도시 교토가 국가적 경제 위기 속에서도 착실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발빠른 첨단화 전략을 택한 때문. 교세라를 비롯한 8대 첨단기업이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22조9천억원에 이른다. 교토의 성장 요인 중 하나가 시 당국의 아낌없는 벤처 지원이다. 교토시는 리서치 파크를 행정조직 아래 두는 대신 경영 마인드를 가진 민간에 위탁시켰다. 리서치 파크에 33개 종합대학과 11개 단과대학이 개발한 신기술을 벤처기업이 활용토록 중계하는 역할을 맡겼다. 산학연의 탄탄한 결합력을 바탕으로 최근 300여개 벤처기업이 설립됐고, 대부분이 수년내 일본 벤처 및 중소기업 주식시장인 자스닥(JASDAQ)에 등록될 전망이다.

일본의 벤처 육성 모델이 반드시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유럽, 이스라엘 모델에 비해 한국적 정서에 더 부합한다. 서구 모델의 장점인 자유분방한 기업가 정신이나 모험심 강한 투자자, 실패에 관용을 베푸는 사회 분위기 등은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 모델처럼 중앙정부 및 지자체 주도의 벤처 인프라 구축, 벤처 육성 전문인력 양성, 꾸준하고 과감한 세제 혜택 및 제도적 지원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과도기에 놓여있다. 제도적 테두리는 잘 짜놓았지만 운영의 묘미는 살리지 못하고 있다. 테크노파크 운영 주도권을 두고 참여 대학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지자체는 이들 대학을 믿지 못해 테크노파크 사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 중앙 정부는 봉오리도 맺지 못한 테크노파크 사업을 폐기 처분할 자세다.

벤처는 인프라와 지원 환경이 적절하게 조화될 때 비로소 꽃을 피우는 특수 수종이다. 헝그리 정신에 바탕을 두고 벤처를 하던 때는 지났다. 적극적인 보육환경 조성으로 하루 빨리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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