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출신지역

낯 모르는 사람을 처음 대면할 때, 우리는 으레 빠뜨리지 않고 상대방에게 반드시 묻는 단골 메뉴가 있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이다.

여러 모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면 특히 나는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서울말씨를 쓰는 나이기에 그네들에게 낯설게 비쳐지기 때문인 듯 싶다. 이제는 이 질문에 익숙해져서 요령있게 대답할 수 있는 노하우도 터득했으련만 여전히 이 질문을 당하면 어떻게 답변을 해야할 지 몰라 항상 당혹해 한다. 고향이 너무 많아 어느 곳을 나의 고향이라고 말해야 할 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향이 서너군데쯤 될 성 싶다. 태어난 곳도 고향이고, 자란 곳도 고향이고, 선산이 있는 곳도 고향이며, 사는 곳도 고향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태어난 곳, 자란 곳, 선산이 있는 곳, 그리고 사는 곳 모두 다르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답을 할 때 마다 이 네 곳이 모두 같은 곳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머뭇거린다. 고민 끝에 이 네 곳 모두를 구구절절히 설명하면서 고향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유독 고향이나 출신지역 따지기를 좋아한다. 혈연 다음으로 지연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편승하여 정치인들은 자신의 출신지역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면서 이를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 십분 활용한다. 또한 정치인들이 특정 직위에 발탁될 때 언론도 그 사람의 출신지역을 빠짐없이 보도한다. 이때마다 나는 이 정치인의 출신지역이 정확히 어떤 고향을 뜻하는지 몰라 곧잘 상념에 잠기곤 한다.

지역갈등의 골이 깊은 우리 사회이기에 정치인들의 출신지역이 중요하고 지역안배가 필요함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영남출신이건 호남출신이건 이들 정치인 대부분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출신지역을 따져 영남맨이니 호남맨이니 하며 이름지으니 참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특정지역에 함께 살면서 그 지역현안과 사정은 물론 지역민들의 애환과 고통을 공감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정치인들이야 말로 그 지역을 올곧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아쉽기만 하다.

영남대 교수·매체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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