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후략) 일제 암흑기에 태어나 만30세도 못 살고 28세의 청춘으로 광복의 해 2월, 일본 후쿠오카(福岡)형무소에서 식민지청년의 애절했던 일생을 마감한 윤동주(尹東柱)시인의 시작 '자화상'(自畵像)이다. 미워서 돌아가다 보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지고 다시 가 들여다보니 마침내는 그리워지는 자신의 모습이다. 윤동주는 이렇듯 자신의 체험을 역사적 국면의 경험으로 확장, 일제를 맞이한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했다. 그저께 29일, 우리나라 전체는 이렇다 할 생각도, 아픔도 없이 산으로, 들로, 초추(初秋)의 휴일을 즐겼다. 89번째 맞는 경술(庚戌)년의 국치일(國恥日)은 그렇듯 무심하게 흘러갔다. 오히려 대한제국과 일본이 자유의지로 나라를 합쳤다는 일제의 표현, '합방'(合邦)이란 말이 의식없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은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바로 2주전 일요일은 '흙다시 만져보고 바닷물도 춤을 춘'광복절이었기 때문에 그처럼 성대했던 기념식을 치렀는가. 치욕은 역사가 아닌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미워져 돌아가지만 마침내는 다시 와 그리워 해야할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89년전, 우리에게 국치를 안겼던 일본에게 아직도 우리는 역사의 통렬했던 아픔조차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방한중인 85세의 일본인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할머니는 "일본인이 역사를 모르니 반성할래야 할 수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정부와 그 숱한 애국단체들은 내년의 90주년 국치일도 그냥 보낼건가.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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