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철학적.사회학적.심리학적 설명의 대상이기에 앞서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감성적 존재이다. 이러한 감정이 고갈된 인간은 생물학적 대상에 불과하며, 이러한 감정이 묵살된 사회는 이미 인간사회가 아니라 작동하는 기계적 체제에 불과하다. 정치의 기능이 보다 바람직한 인간다운 사회의 건설과 보존에 있다면 인간적 정이 삭제된 정치는 무의미하며, 인간적 감수성은 정치가의 가장 기본적 조건 중의 하나이다. 정치(政治)는 정치(情治)이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政治와 情治는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政治는 공적 영역에 속하며, 情治는 사적 영역에 관한 문제이다. 정(情)이 어디까지나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느낌을 뜻한다면, 情治는 그러한데 대한 심리적 주관에 따른 행위를 뜻한다.이런 점에서 볼 때는 情治가 남에 대해 태도와 행동의 원칙이 될 수 있지만, 문제는 한 인간집단 속에서 개개인의 상충되고 갈등하는 이해관계가 언제나 생긴다는데 있다. 政治는 이러한 갈등을 푸는 기술이며, 방법이며, 절차이다.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이나 개별적 집단들의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공정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감정에 주관적으로 지배되지 않고 냉철한 이성에 따라 객관적 법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 개인이나 한 집단에 대한 정(情)은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전체에 대한 비정(非情)이 되며, 情治는 악치(惡治)로, 악치(惡治)는 참치(慘治)로 바뀐다. 政治는 法治의 테두리 안에서만 情治이어야 한다.
각계 시민단체들의 항의와 국민 대다수의 여론을 무시한 김현철의 사면과 옷로비의혹사건 및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政治와 情治가 뒤죽박죽 혼동되고, 情治가 政治로 착각되었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김대통령은 김현철을 사면하는 이유로 김의 아버지와의 인간적 정을 댄다. 김현철의 큰 범죄를 인정하면서도 현 대통령이 대통령의 개인적 권한으로 범인의 부친이며 과거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전 대통령의 아버지로서의 아픔에 대한 인간적 정에 끌려 사면을 한다면, 현 대통령이 공적 인간인 이상, 수많은 작은 범인들의 아버지.어머니들의 정신적 아픔에 대해서도 똑같이 인간적 정을 느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김현철의 사면은 情治가 政治로 환원된 대표적 예가 되거나 아니면 情治를 가장한, 단수가 높은 政治라는 의심이 든다. 너무 政治적인 政治는 썩은 政治이다.政治와 情治의 헷갈림은 옷로비 의혹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관한 청문회에서도 감지된다. 옷로비사건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특권층 부인들의 행태가 법적으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 해도 그녀들이 물의를 일으킨 사건들이 6.25이후 가장 컸던 국난의 시기에 있었다는 점만을 고려하더라도 마땅히 국민으로부터 철저한 도덕적 규탄을 받아야 한다. 그녀들이 국가의 최상위층 권력자들의 부인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녀들의 천박성과 속물성과 비도덕성은 한국 국민으로서 생각만 해도 부끄럽다. 만일 그녀들의 행위가 법적으로도 범죄가 된다면, 그 진상은 분명히 국민에게 밝혀져야 하고 마땅히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청문회에서 서로 상충되는 주장을 하고, 아니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일관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해결한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어떤 권력이 특권층을 감싸줌으로써 政治를 情治로 푸는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의 의구심을 씻기 어렵게 한다.진실과 진리는 반드시 존재하며, 진실과 진리는 언제나 하나 뿐이다. 북풍.세풍을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정치와 정권과는 달리 국민을 위한 정치와 정권이라면 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눈앞에 더 투명해져야 한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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