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희로씨 2, 3일 마지막 옥중면회

재일교포 무기수 권희로씨는 "귀국하면 어머니의 평소 유언에 따라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하겠으며 박삼중 스님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겠다"면서 "출소를 앞두니 잠을 이룰 수 없다"고 자신의 심경과 향후 활동계획을 밝혔다.

권씨는 또 "나의 출소가 늦어진 이유는 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나 한일관계를 고려해 일본정부나 국민을 곤란하게 하는 일은 삼가겠다"고 다짐한 뒤 "후추 형무소 당국이 참으로 인간적인 배려를 해줘 고맙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권씨는 지난 2일과 3일 오전 도쿄의 후추 형무소로 자신을 마지막으로 면회온 후견인 박삼중(부산 자비사 주지) 스님과 후원자 조만길, 최복철씨에게 이같이 말하는 한편 눈물로 점철된 자신의 어린 시절도 회고했다.

그의 마지막 옥중면회 기록은 6일 오전 도쿄 시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개 됐다.

권씨는 먼저 생부가 타계하고 의부가 들어오면서 가난과 폭행에 시달렸다고 회고하고 "굶기를 다반사로 한 나와 동생들은 남의 집 대문 앞에 놓인 고시례를 거둬먹기도 했으며 잘 데가 없어 역구내에서 자다가 경찰에 붙잡혀 실컷 두들겨 맞기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9세 때 집을 나와 히로시마 등을 떠돌며 방랑했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꼭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다짐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저승의 어머니를 어떻게 만나야,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픈 지난날을 들려줬다.

권씨는 이와 함께 "사랑하는 내 어머니, 당신이 태어나서 자란 부산에서 살아가고자 하니 이제는 아무 걱정말고 편히 계시라"는 내용의 글을 이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자신의 살인, 인질극과 관련해 그는 "내가 싸운 것은 일본과 일본인 전체가 아니라 한국인을 개, 돼지 취급하는 부류였다"고 선을 그은 뒤 "차별을 견디다 못해 어린 아이를 안고 물에 뛰어 들어 죽음을 택하는 아주머니의 죽음을 보았다면 누구나 나의 행위가 나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권씨는 "사건 당시 3,4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강한 사랑의 힘 때문이었다"면서 "죽을지언정 남자답게 깨끗하고 당당하게 죽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더욱 용기를 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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