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제경제 현안 석학 대담-바그와티 교수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격랑 속에 21세기 국제경제질서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한국 등 아시아권 국가들의 지속적인 발전은 과연 가능할까.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경제학계의 양대 거두를 통해 불투명한 미래 경제사회를 진단해 본다.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로 투기자본 진단 등 국제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드 베르니스(de Bernis) 프랑스 그로노블대 명예교수는 조절학파의 태두로 세계 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위해 선진자본국들이 대외 부채를 즉각 탕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충영 교수:11월 시애틀에서 열릴 뉴밀레니엄 라운드에서 논의되는 다자간투자협상에 대해 전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무역자유화, 노동, 환경, 정치 또는 경제 부패 등이 다뤄질 전망인데 어떤 주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지겠습니까.

자그디쉬 바그와티 교수:WTO의 뉴밀레니엄 라운드는 무역자유화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현재 공산품 등 많은 분야에서 관세 장벽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무역자유화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지않으면 넘어지고 맙니다. 도중에 협상을 중지하면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할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관세장벽 철폐 등 무역자유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합니다.

안:일반적으로 다자간 협상은 선·후진국 이해 차이만큼이나 협상 능력에서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칫 후진국에 불리한 협상이 진행될 수도 있는데 후진국 입장에서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바그와티:먼저 선진국은 무조건 개방적이고 후진국은 폐쇄적이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선진국도 무역에 있어 보호주의적 성향을 띠는 분야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낙농품에 있어 여전히 높은 관세요율을 적용합니다. 후진국들은 선진국과 상호 대칭적 차원에서 오히려 시장개방을 요청할 필요가 있는거죠.

안:대구라운드 등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단기성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 논의가 불붙고 있습니다. 아시아 금융위기국들은 금융의 건전성을 회복하는 한편 새로운 신용평가 기법을 개발하는 등의 규율화된 금융감독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그와티:전적으로 동감하는 바 입니다. 제 입장은 기본적으로 자본통제가 목적이 되는 어떠한 조치도 반대합니다. 단기자본에 대해 일방적인 통제를 하겠다는 발상보다 단기자본의 유입 규모, 속도 등을 면밀히 관찰하고 자국이 보유한 외환보유고, 환율 등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분석한 뒤 유입속도를 조절하는 정책을 강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단기자본을 무조건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합니다. 굳이 필요하더라도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조치에 그쳐야 합니다. 다만 국제적 큰 손들이 개도국 등에서 통화를 상대로 투기행위를 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로 철저히 금지돼야 합니다. 일부 국가들은 투기자본의 농간으로 수십년간 쌓아온 실물경제의 기반을 하루 아침에 잃고 말았습니다.

안:한국도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당시 IMF는 혹독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제시했고 한국은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금리가 치솟아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실업자가 양산됐습니다. 이처럼 외환 위기 당사국에 가혹한 시련을 강요하는 IMF 프로그램이 적절했다고 보십니까.

바그와티:한국의 경우 처음에 IMF는 무자비할 정도로 초긴축 일변도의 처방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진단에 따른 처방전이었습니다. 고금리 정책을 강요한 것이 기업에 대한 투자 위축을 가져왔고, 불황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금리를 인상하면 유출됐던 외국자본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는 판단 착오였습니다. 말레이시아는 금리를 계속 인하하면서 국내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효과를 보았습니다. IMF도 한국에 외환위기 초기 적용했던 처방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금리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만 초기 대응은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안:한국은 과거 재벌의 집중적 육성을 통해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에서 세계적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들은 과다차입에 의한 문어발식 경영 탓에 비효율을 초래, 현재 재벌 개혁이 도마 위에 올라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차입금 축소, 경영 투명성 확보, 상호지급보증 금지, 부채비율 축소 등을 통해 재벌 개혁을 서두르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그와티:재벌이 여러 업종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정부가 재벌에게 어떤 사업은 해라 또는 하지마라고 통제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과다차입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같은 채무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입을 통해 발생한 것이라면 시급히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재벌들은 과거 관치금융시대에 은행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재벌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증시와 같은 자본시장에서 직접금융을 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아울러 은행도 투자계획 등 사업성 기준에 따라 기업을 평가, 대출해야 합니다. 재벌과 은행권 부실의 원인은 오히려 정부 주도의 관치금융에 있었습니다. 정부가 은행에 압력을 행사해 재벌들에게 지속적으로 대출토록 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안:과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는 고투자, 고저축에 힘입어 압축형 성장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은 뒤 심각한 불황과 혹독한 구조조정에 직면해 있습니다. 앞으로 동아시아 경제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바그와티:한국의 경우 지난 30년간 연평균 8%의 고도성장을 이룩해 낸 것은 분명 기술력과 효율성을 갖췄다는 증거입니다. 폴 크루그만 교수가 '동아시아의 성장은 생산요소 투입을 지속적으로 늘임으로써 성취됐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개혁, 기업부채 해결을 통해 훨씬 효율적인 금융체제를 이룩하고 이를 통해 자원 배분의 합리화를 가져온다면 동아시아 경제는 더욱 강력하고 건강한 체질로 거듭 나 역동적 성장을 지속할 것입니다.

정리:金秀用기자

◇대담자 안충영(安忠榮) 교수 약력=경북대 경제학과 졸,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박사, 한국계량경제학회 회장,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역임, 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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