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도시' 빈. 거리를 누비던 흰 머리 빨강색 트램(전차)이 숲속으로 멀리 사라진다. 무성한 가로수를 피해 공중에 매달아 놓은 신호등이 바람에 슬쩍 흔들린다. 숲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왈츠 선율. 올해는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1825~1899)가 세상을 뜬지 꼭 100년 되는 해다. 이 가을 온 도시를 파고 드는 음악의 주인공은 빈 중앙묘지 32구역에 잠들어 있다. 대신 스트라우스를 추모하는 다양한 음악회로 빈이 술렁이고, 음반과 각종 기념품들로 왈츠 잔치가 더욱 풍성하다.
오스트리아 빈은 수세기동안 유럽의 절반을 지배하며 600여년의 영화를 누려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이자 유서깊은 역사·문화 도시다. 하지만 금세기 들면서 동·서유럽의 접경이라는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었다. 지난 55년 영세 중립국을 선포하면서 냉전시절 동·서유럽의 첩보전이 치열한 현장이었다. 현재도 북쪽은 체코, 동으로 헝가리·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서쪽은 독일과 스위스·이탈리아, 남쪽은 슬로베니아(구 유고연방) 등 모두 7개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함께 긴장감도 많이 수그러든 듯하다. 대신 동구 개방 10년을 맞아 변화의 물결속에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려는 움직임으로 오스트리아가 꿈틀대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의 의장국을 맡았던 오스트리아는 1918년 합스부르크가가 통치해온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가 퇴위한 이후 80여년만에 유럽무대에서 다시 정치적, 외교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중부유럽의 맹주'의 위상이 오스트리아가 꿈꾸는 미래다. 중동부 유럽에서 철의 장막이 무너진 이후 오스트리아는 이 지역 국가들과의 전통적 유대관계를 회복했다. 헝가리와 체코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상황에서 더이상 중립국의 위치를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부유하고 안정된 국가로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인구 800만명의 소국이지만 21세기 오스트리아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는 거대하다. '미텔 오이로파'(중부유럽)의 중심이자 동·서유럽의 교두보를 꿈꾸는 오스트리아의 야심은 국회의사당 건물에서도 드러난다. 시민공원과 인접해 있는 의사당 건물은 온통 대리석으로 눈이 부실 정도다. 그리스 양식의 웅장하고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2차대전의 폐허 위에서 가슴을 졸여온 오스트리아.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염두에 둔 이 국회의사당이야말로 오스트리아인들의 야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방시대를 맞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정치외교적 노력과 함께 경제적 측면은 오스트리아가 가장 비중을 두고 있는 부분이다. 관광산업은 오스트리아 경제를 떠받치는 최대 무기. 만년 적자인 무역수지를 보전, 경상수지를 흑자로 돌려놓고 있는 효자산업이다. 연간 외국 관광객수는 2천만명 수준. 이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외화소득만도 연간 1천 700억 실링(약 16조원)이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건축물인 슈테판 성당을 중심으로 오각형의 환상(環狀)거리인 '링 스트라세' 안쪽에 위치한 빈 구시가지에는 볼거리가 많다. 호프부르크궁, 쉔부른 궁전을 비롯 2차대전후 가장 먼저 복구한 국립오페라하우스와 구스타프 클림트 등 근현대 명화들을 전시중인 벨베레데궁, 건축학도들이 몰리고 있는 현대건축물 하스하우스까지 훌륭한 관광자원들로 인해 빈은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뿐만 아니다. '포도주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홍보를 아끼지 않는다. 악성 베토벤이 살았던 비엔나 숲속 그린칭 마을에는 금방 수확한 포도로 빚은 포도주를 맛볼 수 있는 '호이리게'가 즐비하다. 독일어로 '선술집'을 뜻하는 호이리게에는 밤마다 정통 와인을 맛보려는 관광객들로 그득 찬다. 한국에서 특별한 손님(?)들이 왔다고 하자 빈 관광성의 아시아담당 매니저인 바바라 디트하르트-폴셔씨가 직접 호이리게로 찾아왔다. 일행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밤늦게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등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한 그녀는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강조하며 많은 한국인들이 음악의 도시 빈을 찾아 줄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서 오스트리아가 얼마 만큼 관광산업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2차대전의 폐허위에서 부를 일궈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은지 오래다. 오스트리아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이웃인 체코나 헝가리에 비해 15배나 높은 수준. 이 때문에 동구개방 이후 자국으로 몰려드는 중동부 유럽의 이민자들로 골칫거리다. 이를 막기 위한 방안은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안정에 협력하는 길 밖에 없다는게 오스트리아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다. 오스트리아의 이런 선택 뒤에는 21세기 중부유럽의 맹주가 되려는 야심과 국가의 비전이 깔려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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