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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를 바꾼…정수웅지음

400년전 정유재란때 전북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인 박무덕(朴茂德). 그는 20세기초 두차례나 일본 외상을 지낸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의 다른 이름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외상이었던 그는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전하자 A급 전범으로 몰려 옥사했다. 하지만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그는 격동의 시대에 세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끝까지 투쟁한 인물임이 드러난다.

TV 다큐멘터리 '태평양전쟁 최후의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를 제작한 방송인 정수웅씨가 쓴 '일본역사를 바꾼 조선인'(동아시아 펴냄)은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통해 감춰진 진실을 밝혀낸 기록이다. 한국계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 그는 비록 전범이 되었지만 일생 동안 평화를 희구하며 살았던 한 '평화주의자'였음을 이 책에서 알 수 있다.

1882년 가고시마현 조선인 도공 후예들의 마을인 나에시로가와(苗代川·현 미야마)에서 태어난 그는 5세때까지 한국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사족(士族·메이지 유신으로 재편된 사회지도층 신분계급)으로 편입을 원했던 조부 박이구가 성을 도고(東鄕)로 바꿨다. 뛰어난 도공이자 사업가였던 아버지 박수승(도고 쥬가쓰)은 시게노리가 새로운 문명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든 장본인으로 개화된 인물이었다. 그는 유난히 영특했던 아들 시게노리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도쿄제국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시게노리가 문학 대신 외교관의 길을 걷게된 것은 외교관 시험에 합격한 1912년 30세때. 이후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근무하며 착실히 성장한 그는 일본 외무성 구미·구아국장과 주독일·주소련대사를 거쳐 태평양전쟁 개전과 종전 시기에 두차례 외무대신에 오른다.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 도고는 전쟁을 주장하는 군부와 끊임없이 대립했다. 그는 끝까지 전쟁에 반대했지만 결국 군부와 강경파에 밀려 사임하고 만다. 그리고 일본이 전쟁에서 수세에 몰렸을때 총리의 간곡한 요청으로 다시 외상이 되었다. 또 다시 군부와 대립하면서도 일왕을 설득, 태평양전쟁을 종결시키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로부터 '일본을 미국에 팔아넘긴 조선인'이라는 비판을 들었으며 우익의 위협에 시달렸다. 그는 전범재판을 통해 일본을 전쟁으로 몰고 간 진실을 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미국과 일본 군부 강경파를 당당하게 비판함으로써 '조화의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때문에 그는 다시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많은 비난과 고통을 당했던 도고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현재 많은 일본 역사가들은 그를 '일본을 구한 은인'이라고 공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한 정치가의 신념과 소신을 방대한 자료와 증언을 통해 밝혀낸다. 국적을 뛰어넘어 국제인으로 살다간 도고 시게노리의 가르침은 '동서문화의 융합'이라는 포부와 '정치가는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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