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축이야기(17)

도시가 형성되어야만 가로가 형성되고, 또 가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확장된다. 가로는 도시에 있어서 인간의 핏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인간은 가로를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정보를 취하며, 심미적 쾌감을 느끼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로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렇다면 일상적으로 접촉기회가 가장 많은 이 가로환경은 어떻게 조성되어야 하겠는가?

우리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가까이 있다해서 보다 질 높은 가로환경 조성에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한 도시를 생각할 때 최초로 마음에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가로이다. 가로가 재미있으면 도시도 재미있고, 가로가 지루하면 도시도 지루하다. 따라서 가로는 그 도시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인상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건물의 베란다에 화분을 진열해 놓은 것이다. 주택지 경계부에 담을 세우고, 담 위에 다시 철조망 내지는 유리파편을 꽂아 놓은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같은 현상의 배경은 공간영역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있다.

즉 서구에서는 주거를 도시나 거리와 같은 공공적 외부질서의 일부로 생각하여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있지만, 우리는 가정이라는 사적(私的)인 내부질서로 생각하기 때문에 벗게 되어 있다. 집과 가로를 공간영역적으로 동일시하여 집안에서도 신을 신고 생활해온 서구인과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의 경우 집밖의 가로를 맨 발로 다닐 수 있게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집을 으로, 거리를 이라 생각할 뿐 서구인과 같이 공간영역을 동일시하지 못하고 있다. 즉 우리는 집안을 깨끗이 하거나 장식에는 정성을 쏟지만 은 나와는 관계없는 공간영역으로 외부를 깨끗이 하거나 정돈하는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일로 여겨왔다. 따라서 도시공간을 정비하거나 가로환경을 쾌적하게 하려는 노력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도 쾌적하고 아름다운 가로환경을 만들고자 한다면 공간영역에 대한 의식혁명이 필요하다.

우리의 가로환경은 급격한 도시화와 자동차 소통을 중시한 나머지 좁은 보도, 빈약한 식재, 전가로의 상업화와 광고화 및 도로화, 도시의 이미지성 부족 등의 부정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가로환경 개선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몇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옥외 광고물에 대한 수량, 색채, 규격, 표시내용 등의 기준을 조례로 규정함으로써 건물의 정면성(fasade)을 확보하고 △둘째, 보행자의 안전성과 쾌적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동차 위주가 아닌 보행자 위주로 설계를 하고 노약자, 장애자, 어린이 등의 이용성을 고려하며, 녹음(綠陰) 및 휴식시설이 가미된 가로환경을 조성한다. △셋째, 도시의 주요관문, 주요 가로, 교차로, 중요건축물 등은 대구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미지화하며 △넷째, 역사의 거리, 문화의 거리, 청소년의 거리 등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친근감이 드는 공간의 조성으로 축제, 이벤트, 전시 등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로공간의 활용도를 높인다. △다섯째, 역사적·문화적 또는 지역의 정체성을 갖춘 공간을 경관지구로 지정하여 경관을 보존하고, 새로운 환경의 도입시 기존 경관에 어울리도록 유도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며 △여섯째, 사유공간의 공공화개념의 도입으로 집이 서있지 않은 지면은 설사 개인의 땅이라 하더라도 공공적 외적 질서의 일부로 생각하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끝으로 가로환경을 개선하는데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가 높은 부분이 바로 공공기관, 아파트 등 집단주거지역, 일반주거 등의 담장을 개방시키는 것이다. 최근 대구지역에서의 담장개방운동이 다른 도시에 파급, 확산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며, 이런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따라서 공공기관부터 솔선하되 민간으로 확산되게 각종 인센티브제(시상제, 세제혜택, 용적률 확대 등)를 도입하며 특히 시민단체들의 노력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가로환경의 개선은 시민에게 보다 쾌적한 외부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질 높은 도시공간은 시민들의 생활수준이나 의식수준을 높여주며, 방문객에게는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어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걷고, 머물고, 보고 싶은 가로환경 조성은 공공기관의 노력 뿐만 아니라 시민 개개인이 가로환경에 대한 의식의 전환과 특히 직접 가로환경의 조성에 관계되는 조경, 건축, 토목, 도시계획분야 전문가들의 폭넓은 안목과 질 높은 디자인성이 요구된다.

이제화(Korea Landscape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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