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마라톤과 함께 영원히'1992년 8월 10일 새벽, 국민들은 잠을 설치며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빠졌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주익스타디움의 마라톤 영웅 황영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후 끊겨버린 한국마라톤 맥을 56년만에 다시 잇는 역사적인 대사건이었다.
영웅 황영조의 탄생은 한국마라톤의 신기원을 열었다. 4년뒤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봉주는 2년이 지난 98년 4월 19일 로테르담마라톤대회서 2시간7분44초로 한국신기록을 경신했다. 한국마라톤의 '마의 벽'인 2시간7분대 진입과 함께 황영조가 94년 기록한 2시간8분9초라는 기록을 4년만에 깨며 한국마라톤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
이들, 황영조 이봉주 그리고 김완기 등 세계적 마라톤 스타의 탄생뒤에 우뚝 서있는 불세출의 명조련사 정봉수(64)감독. 한국마라톤의 전성기를 몰고 온 정감독은 지난 87년 코오롱 마라톤팀을 맡은 뒤 90년대들어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면서 세계마라톤계에 '정(鄭)군단'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만큼 정봉수란 이름은 세계 마라톤계에 독보적이었다. 지금도 그의 명성은 진행형이다.
자신이 한때 타도를 외치며 한수 배웠던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였다. 경북 금릉군 증산면 유석리가 고향인 정감독은 선수보다도 지도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육상에 소질을 보여 아시안게임 출전꿈도 꾸었으나 6·25전쟁으로 좌절됐고 대구서 군입대후 육상선수로 활약했다. 정감독의 인생은 80년 육군 제3사관학교 감독(경북육상연맹 초대전무)시 코오롱그룹 이동찬회장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이때 맺은 인연은 87년 코오롱 마라톤팀 창단으로 연결, 90년대 세계마라톤계를 휩쓸고 한국마라톤사에 불후의 금자탑을 세웠다. 이를 가능케 한 그 특유의 독기서린 조련방법은 지금도 선수들이 고개를 흔들정도로 유명하다.
그의 고향에는 올해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도 세워졌다.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은 그이지만 세계적 지도자로서 내년 시드니올림픽우승으로 화려하게 마감하고 싶은 의욕만큼은 여전하다.
鄭仁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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