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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에 비친 20세기-(2)공업화 100년

"그 옛날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시간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한시간을 하루 같이, 하루를 일년 같이 사용했습니다…"

어느 재벌의 광고에 쓰였던 문구. 정말 그랬다. 그런데도 아직은 여전히 부족한 모양. 광고를 냈던 그 그룹도 무너져 버렸다.

경제 분야의 지난 100년은 우리에게 특히 숨가쁜 세월이었다. 앞선 나라들이 수백년 동안 해냈던 변화를 불과 한세기만에 다 치러내야 했기 때문일 터. 거기다 일본에 35년의 세월을 뺏기고, 6·25전쟁과 정치적 불안까지 짐 되지 않았던가? 남은 세월이라곤 겨우 30여년.

그 짧은 시간에 우리가 목숨 걸다시피 달려야 했던 외길은 공업화였다. 게다가 거기에도 여러 단계. 우선은 경공업으로 시작했지만, 또다시 중화학공업으로 몸피를 개조해야 했었다. 그 다음엔 자동차·전자, 또 다음엔 반도체·컴퓨터, 또 무엇무엇… 정신 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는 또 뭐라나? 정보 자본주의 시대라고? 여전히 길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게 언제던가? 60년대 어드메쯤? 우리 초창기 경공업의 상징이었던 가발공장이 생기고 있었던지, 빗어 빠진 머리카락 조차 모아 놨다가 수집상에게 팔던 집안 안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다음엔 어린애에서 나이 든 아줌마까지, 여자라면 너나 없이 붙어 앉아 홀치기 하던 풍경. 70년대까지도 그랬었지.

그것이 산업화 초기의 우리였다. 그래도 그것은 차라리 희망이었다. 1905년의 경부선 철로 개통은 20세기 변신의 한 상징적 사건. 그러나 일제에 의한 공출·수탈·배곯음, 그리고 한많은 피난살이. 55년도에 세발택시가 선보이고, 61년도에는 드디어 경제 재건 5개년계획이 수립됐었다. 그에 힘입어 울산공단, 포철, 마산 수출자유지역이 생겨났었고.

70년도의 경부 고속도로 개통, 71년도의 구미 전자공단 건설… 자신감이 붙는 것은 기분 좋은 일. 하지만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으로 상징되는 노동의 여러 문제도 함께 비대해졌었지. 70년대의 그 살벌하던 오일쇼크…

인구도 두배 이상 늘었다. 전쟁 중이던 52년도에 2천만 남짓하던 것이, 15년만에 3천만을 돌파(1967), 그 17년 뒤(1984)엔 4천만을 훌쩍 올라섰고, 지난 11월엔 4천700여만명으로 급증했다. 반대로 농촌은 급격한 위축기로 접어 들었고. 67년도에 1천600만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농가인구. 그러나 81년도엔 드디어 1천만 밑으로 떨어졌고, 95년도엔 500만도 밑돌게 됐었지… 농부는 도시로 가고, 그 떠난 빈터에 우루과이 라운드의 스산함이 몰아치더니, 지금은 미국 시애틀로부터 폭풍의 조짐이 번져오는 중.

환경? 오염? 이제 그걸 중요하게 생각게 됐으니, 참말로 많이 좋아졌어. 늦다고, 아니면 여물지 못하다고 안달만 할 일은 아니리. 우리에게 언제 세월이 충분했던가?

불과 30여년 만에 이제는 너무도 복잡해져 버려, 신문의 경제면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사람 조차 많잖다. '금융'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 줄 눈치채고 있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됐을까? 증권이 그 복잡한 기전을 작동키 시작하더니, 세계 경제에 알몸으로 노출돼 버렸는지, 어느날 갑자가 IMF사태라는 초토탄이 떨어지고… 오늘(3일)이 꼭 2년전의 그날. 돈을 빌려달라, 그러면 시키는대로 하겠노라… IMF에 서약서 쓰던 날.

우리 대통령은 한참 전에 이미 IMF 졸업을 공식 천명했지만, 실제로 그런지 어떤지 서민들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과연 우리 경제는 건강성을 회복했는지, 이제는 반석 위에 올라 섰는지, 그래서 잡념 없이 앞만 보고 달리면 되는지…

"환자가 병원에 왔으면 병 제대로 고칠 생각 해야지, 어떻게 돼 먹어서 빨리 퇴원할 것만 생각하는가". 그 울고 싶던 사태 얼마 뒤 곧바로 도졌던 IMF 탈출 조급증을 걱정하던 어느 전문가의 말이 되살린다. 기술에선 선진국에 밟히고, 가격에선 후발국에 치밀리고, 그래서 엔고나 기다려 목을 늘어 뜨리고… 하던 우리의 한계는 정녕 극복돼 가고 있는가? 진정한 기반, 기술적 우위에 기반한 확고한 경쟁력은 쟁취되고 있는가?

여기다 또 우리를 독촉하는 정보 자본주의 시대로의 편입. 거기서의 뛰어난 선도력 확보는 가능할까? 경제에서의 지역 소외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2000년대에도 역시 한시간을 하루 같이, 하루를 일년 같이 쓰자는 권고가 구호로 들리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부족했던 우리의 세월을 채워넣기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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