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 빈곤층 그들은...독거노인들의 겨울나기

"외롭고 아파도 죽을때까진 이렇게 살아야지"

일흔 세살의 김명자 할머니(대구시 산격동)는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불꺼진 단칸방에서 지낸다. 올해로 혼자 산지 20년째.

"전처 소생의 딸이 하나 있지만 연락이 끊긴지 2년도 넘었다"는 할머니는 "백내장을 앓아 눈이 어두운데다 관절염까지 있어 요즘은 밥도 겨우 해 먹는다"고 털어놨다. 김 할머니의 유일한 생활비는 정부로부터 매달 받는 보조금 15만원.

"방값 9만원 내고 쌀사고 공과금 내면 빠듯하지. 요즘 같은땐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하루에 보일러를 3시간 이상 틀지 못해".

하루에도 몇번씩 '빨리 죽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김할머니.그래도 양로원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친구 하나가 양로원에 있다가 나왔는데 나 같이 눈 어두운 사람이 들어가면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고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며 "이렇게라도 혼자 사는 게 휠씬 나을 것 같다"고 했다.

IMF 이후 후원금은 끊어지고 기름값이 오르면서 겨울나기가 훨씬 힘들어진 독거 노인들.

사는게 고통이지만 복지 시설에 가길 꺼리는 이들은 김 할머니뿐만 아니다.

현재 대구 지역의 독거 노인은 1만7천200명. 이중 정부 보조금만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이 3천 900명에 이른다. 물론 원한다면 당장 양로원에 들어갈 수 있다.

노인 후원 사업을 펴는 가정복지관 서성미(30.여)과장은 "양로원이 생활면에선 휠씬 나은데도 대다수 노인들은 신분이 드러나고 여러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 양로원에 대해 일종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노인 복지 시설은 항상 정원 미달이다.

대구시 북구 칠곡동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잡은 복음 양로원. 2인1실 기준으로 정원이 90명이지만 현재 60명의 노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양로원 관계자는 "몇년을 망설이다가 양로원에 들어온 뒤 빨리 오지 못한 걸 후회하는 분들이 많다"며 "하지만 단체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나 자신이 양로원에 왔다는 심적 부담감 때문에 아직 대다수의 노인들이 문의만 한뒤 되돌아 간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중증 뇌성마비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오동석(26)씨. 하지만 남구 대명 3동 주택가에서 혼자 10년째 살아오고 있다."하루 이틀씩 밥 굶을때도 많았죠. 그래도 이렇게라도 지내는게 복지시설에 가는 것 보단 사람답게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눌한 말투지만 오씨가 갖고 있는 시설에 대한 거부감은 대단했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한시적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돼 매달 12만원씩의 보조금을 받지만 수입이 전혀 없는 오씨에겐 겨우 세끼 식사를 해결할수 있을 정도.

오씨가 사는 대구대 대명동 캠퍼스 주변엔 생활능력은 없지만 자원봉사자의 도움과 정부 보조금만으로 삶을 지탱하는 장애인들이 곳곳에 있다.

대명 3동 복지 담당자는 "우리 동에만 등록된 장애인이 400명인데 혼자선 식사조차 해결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 많다"며 "그럼에도 이들은 시설을 거부한 채 상호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 수가 대구에만 2천명. 대다수가 오씨처럼 이웃과 함께 살기를 고집하며 어렵게 살아간다.

서구종합복지관 윤주희 과장은 "복지 시설이 의식주 해결면에선 상당한 발전을 했지만 삶의 질적 부문에 있어서는 아직도 취약하다"며 "삶의 의미를 가질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밥'은 있지만 자신의 삶이 무너진다고 여기는 복지시설. 21세기에는 이들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李宰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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