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無骨' 추락… 변혁의 갈림길

국민적 의혹을 살때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거듭 다짐한 검찰. 그래서 더이상 깎을 뼈도 없어진 '무골(無骨) 검찰' 소리까지 듣는 검찰. 그런 검찰이 헌정(憲政)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구지검 청사 복도에는 요즘들어 더 눈길이 가는 글귀가 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 그러나 지금은 검찰이 누워버렸다. 나라도 누워버린 형국이다. 검찰이 흔들리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검찰이 겪은 올 한해는 풍랑 그 자체였다. 벽두부터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터졌으며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의 항명 사건, 검찰총장 부인이 연루된 옷로비 사건이 줄줄이 이어졌다.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으로 대검찰청 현판이 시민단체에 의해 폭탄주 세례를 받는 치욕을 당했으며 급기야 대검공안부가 서울지검에 의해 압수수색당하고 직전 검찰총수가 구속되는 불상사마저 겪었다.

검찰의 망신살은 그치지 않았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깨지면서 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 제도가 도입됐다. 특검의 옷로비 의혹 수사는 먼저 있었던 검찰의 사건 수사 축소·은폐 시비를 낳았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커지면서 일선 검사들도 일할 맛을 잃었다. 최근 대구지검의 한 검사는 사건 조사하던중 고소인으로부터 "김태정이도 조사하는데 이까짓 사건 하나 제대로 못하나"는 핀잔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검찰 수사 결과를 못믿겠다며 상급 검찰청에 항고하는 비율도 지난해보다 30~50%나 늘었다.

검찰의 위기는 스스로 지은 업보다. 대구경실련 민영창 사무처장은 "정치권이나 재벌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에 투명성이 없다는 사실이 계속 증명되고 있다"며 검찰의 위상 추락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죄가 있다면 조사해야 하는게 법치국가의 정의인데 옷로비 사건만 봐도 검찰총수가 연루됐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수사를 회피하는 식의 '이상한 특권의식'을 검찰은 갖고 있다"고 질타했다.

정한영변호사는 "검찰권은 사회적 약자인 국민들의 권익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시스템인데도 정치권이 동네깡패가 힘을 쓰듯 원칙없이 행사해 사유화함으로써 불행한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그는 "국민들의 보호막인 검찰권이 무력화되면 범죄자와 사회적 강자가 횡포를 부릴수 밖에 없다"며 검찰에 대한 신뢰회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의 정서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6월초까지 대구지검장을 지낸 전용태변호사는 "우리나라에는 실정법 못지 않게 정서법(情緖法)도 존재하는 것 같다"고 전제하고 "국민들이 특정사안에 대해 감정에 휩쓸린 나머지 여론에 따라 검찰권을 행사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특검의 조사 결과에도 불신감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그는 "특별검사를 못믿는다면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검찰의 위기는 어차피 한번쯤 겪어야 하는 진통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구지검의 한 젊은 검사는 "검찰은 지금 중대한 변혁기에 있다. 거듭나기 위해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통과의례로 본다"고 말했다.

요즘 검사들의 사건 처리 행태를 보면 변혁을 위한 희망적인 조짐도 발견된다는 견해도 있다. 예전에는 평검사가 부장검사나 그 윗선의 다소 부당한 지시를 어기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 그러나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담당검사의 권한이 매우 커졌다.

담당검사의 법률적 판단과 양심에 따른 수사 풍토의 확립만이 검찰을 현재의 위기에서 건질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을 구원할수 있는 이는 검찰자신 뿐인듯 하다.

金海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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