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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00년 (11)재일동포 모국방문단(상)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들을 대상으로한 모국 방문 성묘단 사업이 시작된 경위는 대한적십자사가 제의한 '천만 이산가족 찾기운동'에서 시작됐다.

대한적십자측은 1973년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선적으로 쌍방이 일정수의 '추석 성묘단'을 상호 파견할 것을 제안했으나 북한 적십자측은 이를 거부했다.

1975년부터 민단은 이산가족찾기 사업을 가능한 범위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재일동포 사회만이라도 인도주의 정신을 구현하자는 의미에서 모국방문 사업에 착수했다.

조총련측의 반대공작에 대비하여 극비리에 추진된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 성묘단 사업은 같은해 4월 가나가와(神奈川).가와사키(川崎)민단지부 성묘단 16명이 처음으로 역사적인 출발을 했다. 뒤이어 하루간격으로 오사카에서도 32명이 그리던 고국땅을 밟았다.

언론의 관심이 쏠리자 이 사업은 이미 비밀의 단계를 넘었고 민단 중앙집행위에서는 모국방문 성묘단 사업의 전국적인 추진을 알렸다. 그로부터 약 2개월간 참가자들은 크게 늘어 났고 출발 예정일을 성묘에 적합한 추석 명절 시기로 변경했다.'해방 후 30년 동안 한결같이 조국땅을 바라보며 그리던 고향산천….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조상 제사와 성묘를 권유합니다' 민단에서는 이같은 내용의 호소문을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들에게 발송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시작된 재일동포 모국방문단 사업은 확산을 거듭해 민단측 집계로 보면 20주년이 되는 지난 95년까지 4만5천277명의 조총련계 동포들이 참가해 부모형제들과 상봉해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초창기 참가자중에서 약 70%는 모국을 방문한 후 새롭게 현실을 파악하고 조총련을 탈퇴해 민단으로 입단, 새출발하기도 했다.

한편 조총련측의 조직원들은 내부적으로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참가 저지를 위한 설득 작전에서 극한적인 폭력 방해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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