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바람직한 현상은 주민에 대한 행정서비스가 속도감있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민원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군청의 대민봉사실을 들러보면, 공무원들의 대민봉사 의식이 거의 혁명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자세부터 달라졌다. 턱짓이나 고갯짓으로 민원인들을 대하던 종전의 위압적이고 무성의한 자세는 대체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민원인들과 나누는 공무원들의 복장도 단정하게 세련되었고, 대화의 억양도 낭만적이리만큼 나긋나긋해졌다.
뿐만 아니라, 민원실의 실내장식도 이곳이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시절에 국민들에게 군림하였던 관청이라는 흔적을 지우려는 의지를 역력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신청한 서류를 넘겨받을 때까지의 지루함을 메워 줄 갖가지 편의시설이 실내에 설치되거나 비치되어 있다. 편안한 소파와 탁자와 어항까지, 그리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마실 음료와 읽을거리가 비치되어 있다. 주민들의 진솔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가려운 데가 어딘지 알아내려고 현장을 접촉하는 빈도수도 많아졌다. 어깨에 힘을 주고 부라린 시선으로 주민을 대하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토록 많이 변했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이듯 바람직하게 변하고 있는 앞마당 아닌 뒤란쪽 음지에는 지방자치제가 낳는 병폐가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가장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이는 측면은 지방자치제가 어떤 사안에서는 이익집단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만들 정도로 태도가 돌변한다는 점이다. 내 앞치마만 깨끗하면 그만이라는 배타적 발상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 집 쓰레기를 야음을 틈타 남의 집 대문곁에 버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집 쓰레기를 우리 집 대문곁에 버리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은,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려다 숲을 놓치는 것이며, 손바닥으로 달을 가리는 미련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지방행정기관의 의식이 급속도로 상업적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장사꾼처럼 이문이 남지 않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간여도 않겠다는 것이고 그런 경우, 기왕에 있었던 시설이나 제도 역시 과감하게 걷어치우겠다는 태도다. 의료시설이 부족한 산골 소재지에 있었던 보건소를 예산만 갉아먹는 기관이라해서 걷어치우는 사례들이 바로 그것이다. 당장 눈 앞의 세수이익을 탐한 나머지 먼 장래를 염두에 두지 않고, 환경유해 건물이나 시설물 신축을 앞다투어 허가해 주고 있는 것도 개탄스럽다. 지방자치기관들의 이런 신중하지 못한 행정은 환경만 훼손시키고 더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겐 괴물처럼 되어버린 지역감정의 세분화를 낳는다는 것이다. 저수지 하나를 만들려 해도 언덕 아래에 살고 있는 주민과 아래쪽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이 다르다. 물론 당연하다. 그러나 의견이 다르면, 그 사안을 놓고 담담하게 그리고 침착성있게 논의하고 타협하는 자세를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입느냐를 가지고 감정싸움이 시작되고, 지방행정기관이 이런 싸움에 중재자로서의 역할은 커녕 어느 한 편에 은근히 동조하고 나서게 됨으로써 타협은 애당초 물 건너가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런 배타적 행태들이 당장 발등에 떨어지는 손해는 막아줄 수 있겠지만, 먼 장래에는 담장 하나를 두고 삿대질이 오가는 지역감정의 세분화라는 또 하나의 고질병을 얻게될지 모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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