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베네수엘라 폭우 피해-참사 현장 이모저모

허리케인 '미치'(Mitch)의 영향으로 사상최악의 수재를 입은 베네수엘라 북부의 항구도시 라 과이라에서 생존자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하던 특전부대장 마리오 아르발라에스 대령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신분증 다발을 꺼내들면서 울컥 울음을 삼켰다.

이윽고 그는 "죽은 사람들거야"라는 말을 나지막하게 뱉어냈다.

세기말 베네수엘라를 덮친 기상재해로 20일 현재(현지시간) 최소한 1만5천여명의 사망자와 2만여명의 실종자, 15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해군과 특전부대 요원들이 재해지역에 파견돼 5일째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엄청난 자연재앙 앞에서는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마리오 대령은 잠시 지휘봉을 내려놓은 채 구조헬기들에 실리는 수백명의 부상자와 사망자들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수도 카라카스로부터 불과 20마일가량 떨어진 라 과이라시에는 현재 죽음의 냄새가 가득하다.

도시 전체를 뒤덮은 시뻘건 황토와 물에 잠긴 가옥과 건물, 반파 또는 대파된 채 여기저기 나뒹구는 차량, 물웅덩이가 생긴 곳마다 엎어진 채 떠다니는 시신들, 산사태가 발생한 지역에서 생매장된 채 구조를 기다리는 주민, 생필품 부족으로 아우성을 지르는 15만여명의 이재민 등 모두가 생지옥이다.

이재민수용소에 수용된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벌써 이질과 그에 따른 탈수증 등 전염병 창궐조짐이 나타나면서 보건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때 좌초된 화물선에까지 올라가 식수·식량 등 생필품 확보전쟁에 나섰던 주민들 사이에서는 생필품 공급물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라자 다시금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일부 이재민들은 빵과 우유 등 음식물이 눈에 띄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빼앗듯이 가져가는 등 살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특전부대와는 별도로 보안군은 이따금 허공에 총을 발포하면서 약탈행위를 경고하는 등 돌발상황과 치안부재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허기에 지친데다 굶주린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하비에르 마르티네스(50)씨는 "차라리 날 죽여주세요.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옷가지나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먹일 우유입니다"라며 절규했다.

이번 허리케인으로 세계 3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전기·통신·항만·도로·병원시설의 파괴에 이어 학교·가옥·관공서 등이 폐쇄되면서 순식간에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하는 20억달러 가량의 재산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투표를 통한 새 헌법의 통과로 모처럼 재기의 의지를 다졌던 베네수엘라가 다시금 침체의 늪으로 빠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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