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끝 혹은 시작

오늘이 동지이다. 해가 짧아져서 이기도 하겠지만,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하루해가 더욱 짧게 느껴지는 때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난 일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려니 바쁜게 당연한 듯 싶다.

옛사람들은 동지를 모든 양(陽)이 다 음(陰)으로 바뀌고, 다시 땅 깊은 곳에서 양이 처음으로 올라오는 날이라 하여 매우 소중한 절기로 여겼다. 그러기에 바깥출입을 삼가며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간소한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다. 이는 한 해 동안 지나온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어 새 해를 맞이 할 준비를 하기 위함이다.

끝 혹은 처음이라는 말은 늘 마음에 미묘한 동요를 일으키게 한다. 더욱이 올해는 한 세기의 끝이기도 하고, 한 천년의 끝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사람마다 느끼는 감회가 유별난 것이고, 접을 것과 펼 것도 다른 해 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니 세상이 이렇게 부산해 지는가 보다. 이는 아마도 지금까지의 삶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자기 반성 때문이기도 하겠고, 다가오는 새해, 새천년에는 과거의 아쉬음을 거울삼아 새롭게 비약하고 싶은 마음이 다른 어느 해 보다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북새통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계획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지나온 날을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중요한 인생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꼭 어떤 때에 맞춰서 해야만 하는 것인지, 혹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크게 뒤떨어지는 삶을 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끝과 처음이 본디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 있는 곳이 항상 처음이면서 끝이고, 끝이면서 처음이라고 생각한다면 말(言語)에 매달려 허둥대는 것보다 훨씬 경건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얼음장 밑에서 온 생명이 요동을 시작하는 오늘 같은 날, 올해부터는 끝 혹은 처음이라는 말에 내둘리기 보다는 차라리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같은 잘못은 두 번 거듭하지 않는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며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김성범.정동서당 훈장.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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