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최대 호황 '서로 제덕분'

지난 8년간에 걸친 클린턴 대통령 재임 중의 미국 사상 최대-최장기 호황은 누구 덕분이었을까? 부시 행정부의 경제 성패 전망과 맞물려 그 시비가 지금 한창이다. 클린턴은 존슨 이래 처음으로 재임 중 경기후퇴를 겪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호황은 누구 덕분이었나=부시측의 공화당은 호황이 클린턴의 업적이 아니라 레이건 전 대통령의 공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규제를 최소화 하고 투자자.기업가들의 세금을 낮춤으로써 그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바로 레이건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클린턴 측은 "경기후퇴에 대한 공화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이 세금인상을 밀어 붙임으로써 재정흑자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기업투자를 부추겨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로버트 라이샤워 도시연구 소장도 호황의 공로는 최소 40% 이상 클린턴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유무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FRB의 자율성 보장 등이 유효했다는 것이다.

25일자 뉴욕타임스 신문 역시 클린턴이 대통령 당선 직후 그린스펀 FRB 의장의 조언을 통해 예산적자 축소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예산축소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사상 유례 없는 경제 번영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예산축소 및 작은 정부는 공화당의 정책으로 민주당 정강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는데도 클린턴은 이를 채택했다는 것. 민주당은 많은 정부 지출을 통해 서민 복지를 꾀하려는 쪽이다.

방향이 결정된 뒤 클린턴은 부유층 세금 징수 확대를 통해 재정적자를 축소, 그 영향이 때마침 일기 시작한 경기회복 훈풍과 어울려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7%에서 1년 후에는 6%, 최근에는 4%선까지 떨어졌다.

◇우호적이었던 상황=그러나 이런 정치적 시비와 달리, 민간 전문가들은 또다른 데로 공을 돌린다. 연간 10조 달러에 이르는 미국 경제의 호황이 어느 한 국면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는 입장.

우선 정책 측면에서 주목하는 공로자는 그린스펀 FRB(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다. 경기의 과열.냉각 시점을 잘 파악해 금리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큰 기여를 했다는 것. 그러면서 상황 측면에서는 3가지 정도를 공로자를 지목했다. 하나는 1997∼98년 사이 아시아에 불어 닥쳤던 통화위기. 아시아의 상품들이 싼 가격에 미국으로 수입돼 인플레를 억제해 줬다는 것이다. 아시아 불행이 미국에는 축복으로 작용했다는 얘기이다. 또 막대한 액수의 국방비 감축을 가능케 했던 냉전체제 해체, 정부 세입을 급증시켜 줬던 주식시장 붐 등도 공로자로 지목됐다.

◇부시도 잘 해낼까=부시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도 경제 때문에 재선에 실패한 바 있으나, 주위에선 새 부시 행정부 역시 "일단 여건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 때문에 부시 당선자도 경제 현안을 서둘러 챙기고 있다.

부시측 시각은 이미 알려진 대로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쪽. 체니 부통령 당선자는 심지어 "경기후퇴의 초입"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발언에는 2가지 저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경제가 나빠질 경우 책임을 클린턴 정권에 떠넘기기 위한 근거를 마련해 두는 것. 또하나는 부시의 핵심 선거공약인 감세 정책 시행 명분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규모 감세정책은 공화당 소속인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한 것이다. 레이건은 카터 전임 대통령 시절의 경제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소득세 감축과 연방정부 규모 축소를 제시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부시의 야심과는 다르다. 경기가 하강한다면 재정 수입도 줄어 오히려 세금 감면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때문에 공화당 지도자들 조차 벌써부터 전면적 감세 보다는 선택적 감세의 채택을 주문하고 있다.

◇체니 영향력에 주목=이런 가운데 이 문제에 체니가 어떤 자세로 대응해 나갈지 모두들 주목하기 시작했다. 부시의 스타일로 봐 체니는 거의 '총리' 혹은 '또하나의 대통령'으로 역할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기 때문.

지난 23일자 USA투데이 신문은 "체니가 마치 '공동 대통령' 같은 인상을 이미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루킹스연구소 한 연구원은 "닉슨 대통령 이전까지 만해도 부통령은 모습만 보이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며, "그 이후 부통령의 책임이 증대됐으나 체니는 더 특별하다"고 평가했다.

부시측 대변인도 "체니의 역할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비중 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도 역대 부통령들이 담당했던 마약 규제(부시 부통령), 우주항공 프로그램 관장(퀘일 부통령), 정부개혁(고어)과 같은 '한직'을 맡을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3명의 대통령 참모를 지냈던 브래들리 패터슨은 "체니 처럼 행정부와 의회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라며, "행정 경험이 적은 부시와 너무도 많은 체니는 서로의 역할에 매우 흡족해 하고 있는 것같다"고 관측했다.

24일자 워싱턴포스트 신문도 "체니는 행정부에서 주식회사의 CEO(최고경영자) 같은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문은 새 행정부를 '부시-체니 주식회사'에 비유, 부시는 '이사회 회장'으로 정책기조와 목표를 정한 뒤 최종 재가를 내리며, 체니가 CEO로서 모든 실무를 집행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 일각에서 "체니가 사실상 총리가 되고 부시는 명목상 국가 원수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CEO 역할이 가장 적당한 비교가 될 것이라고 신문은 판단했다. 엄격한 위계질서, 명확한 명령 계통, 수단 보다는 목적, 절차 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이념 보다는 호환성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가 새 행정부에 이식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외신종합=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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