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운중 2학년1반의 음악 수업이 열린 음악실. 수업이 시작된 지 5분쯤 지났을까. 뒷문을 열고 들어서니 감미로운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2악장'. 곡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현영철 교사는 PC를 만지기 시작했다. 음악이 끝난 뒤 작곡가 비발디에 대한 소개가 프리젠테이션 자료로 TV를 통해 소개됐다.
곡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도운 건 이어진 비디오 자료. EBS 프로그램을 녹화한 것이었다. 금난새씨가 곡에 대해 설명하면서 바이올린, 비올라 등 악기별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학생들은 이내 음악에 맞춰 허밍을 넣었다.
클래식은 요즘 중학생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지는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데 현 교사는 다시 수업 방향을 바꿨다. 가수 이현우가 자신의 노래 '헤어진 다음날'을 부르는 화면이 TV에 비쳤다. 웬 대중가요 하는데 자세히 보니 그 곡의 전주는 비발디의 겨울 2악장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익숙한 노래라는 듯 학생들이 흥얼거리자 현 교사는 크게 따라부르라고 했다. 5교시라 졸립기도 하던 학생들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노래가 끝나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학생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현우의 노래처럼 클래식에서 주제나 소재를 가져온 대중음악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었다. 과제가 주어진 것은 불과 3일전.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은 현 교사로서도 내심 어떤 발표가 나올까 기대반 염려반인 눈치였다.
첫 학생이 나와 발표를 진행하면서 익숙하게 PC를 조작했다. 바흐의 '미뉴에트'가 mp3파일을 통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영화 '접속'의 삽입곡을 역시 mp3 파일로 틀었다. 음색만 다를 뿐 같은 곡이라 학생들은 "아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번째 학생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고 나왔다. 샘플링한 곡은 신화의 'T.O.P'. 현교사도 무슨 노래인지 감을 못 잡고 있는데 학생들은 흥얼흥얼 따라부르고 있었다. 이어진 학생 역시 베토벤의 '합창 중 환희의 송가'를 갖고 나왔는데 사례로 소개한 곡은 H.O.T의 '빛'이란 노래. 모두들 PC에서 mp3 파일과 오디오 재생 프로그램을 쓰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세대 차이를 절감한 현 교사는 손을 들고 말았다. "발표 준비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걱정했는데 신세대 감각에 맞는 노래들을 훌륭하게 잘 골라왔다"는 칭찬과 함께 학생들의 박수소리가 교실을 메웠다.
"한 곡 더 감상해보라"면서 현 교사는 여배우가 김칫독을 들고 뛰어가는 광고 화면을 띄웠다. 배경음악을 자세히 들어보니 롯시니의 '윌리엄텔 서곡'이었다. MBC 뮤직뱅크에 방송된 장나라의 '고백' 뮤직비디오 감상으로 수업은 끝났다.
불과 한 시간의 수업. 음악 시간의 클래식 수업에 대해서는 지루했던 기억 뿐인 기자였지만 언제 시간이 다 됐나 싶을 정도로 생동감 있는 수업이었다. 여기에는 학생들에게 익숙한 대중가요, 광고 등이 동원됐지만 이를 뒷받침한 건 PC와 TV, 비디오 등 여러 미디어들이었다.
수업을 마친 현 교사는 자신의 수업 방식을 '미디어 활용 수업'으로 바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음악을 그대로 꺼내와서는 수업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를 높이면서 음악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써야 하는데 미디어를 잘 쓰면 학생들이 딴 생각 할 틈도 없이 수업에 끌려옵니다. 내용 면에서도 클래식과 함께 영화나 광고 등 상업 음악까지 가르쳐야 경쟁력 있는 교육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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