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연재를 마치며

우리에게 지금 소리가 있는가. 우리 시대의 소리라고 할 만한 민중의 노래는 있는가. 소리를 찾아 시골에 가면 노인들만 있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없으니 자장가도 없다. 노인들의 기억 속에 저장된 자장가를 겨우 퍼올릴 따름이다.

손자를 안아본 적도 손녀를 업어줄 일도 없는 노인들이 자장가를 제대로 부를 턱이 없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소리를 겨우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소리가 없는 마을, 노래가 죽은 공동체는 신명도 없고 희망도 없다. 어느 공동체나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고서는 그 사회를 지속시킬 수 없다.

할머니들이 업고 다니던 아기들이 벌써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들이 소리를 들려주던 아이들이 모두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이제 그들에게는 업어 기르며 소리를 들려줄 아이들이 없다. 노인들만 있는 사회에도 미래가 있을까.

옛소리만 되풀이하는 사회에서 내일을 기대해도 좋을까.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신명과 해방의 꿈을 담아낼 소리가 없다면 내일을 보장하기 어렵다.

소리가 무엇인가. 살아있음의 표현이자 고통의 아우성이다. 노래는 무엇인가. 생명이 노니는 소리이자 해방의 추임새이다.

입에서 입으로 노닐며 신명을 부추기고 해방의 꿈을 영글게 하는 것이 곧 노래 아닌가.

시대의 아픔과 민중의 신명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시이다.

얻어터지면 아프다고 아우성을 지르는 소리가 바로 시이자 문학이다. 김지하의 시가 그러했다.

지금 그런 소리가 있는가. 일하면서 느끼는 신명을 가락에 싣고 거기다 몸짓까지 얹어 일손을 어깨 짓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현장에 살아 있는 민중의 소리문화였다.

우리 시대의 아우성을 옛노래에다가 담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일꾼이자 소리꾼이며 시인이었다. 이제 그들이 부르던 신명의 소리도 해방의 노래도 잦아들고 있다. 소리가 죽어가는 사회는 죽은 시인의 사회나 다름없다. 시대의 아픔에 모두 아우성을 지르자. 우리 모두 소리꾼이 되자. 현장에서 들리는 민중의 소리를 담지 못하고 내 못난 소리만 낸 것 같아 남세스러울 따름이다.

임재해(안동대 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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